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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이 더 아픈 건 사회적 불평등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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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이 더 아픈 건 사회적 불평등 때문이죠”

입력
2018.08.29 04:4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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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센터장 

 공저 ‘몸은 사회를 기록한다’ 출간 

 “비정규직이 산업재해 많이 겪고 

 시간제 근로자가 건강 더 나빠 

 복지보다 불평등 줄이는 게 시급”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건강형평성센터장은 “몇 가지 정책으로 건강 불평등을 없앨 수는 없다. 노동시장 구조를 바꿔야 한다. 다만 소수자 혐오, 차별에 대한 처벌은 법제화를 통해 당장 바꿀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건강형평성센터장은 “몇 가지 정책으로 건강 불평등을 없앨 수는 없다. 노동시장 구조를 바꿔야 한다. 다만 소수자 혐오, 차별에 대한 처벌은 법제화를 통해 당장 바꿀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한국전력공사 비정규직의 산업재해 발생 건수는 2016년 기준 정규직보다 39배 높다. 올 3월 기준 강남구 구민의 기대 수명은 84.8세로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가장 낮은 금천구 구민 81.7세보다 3.1세 높다. 가난한 사람이 더 아픈 현상은 단지 우연일까. 여기 ‘아니다’ 라고 단호히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건강 불평등을 연구하는 비영리단체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들이다. 2006년 보건의료시민단체 ‘건강세상네트워크’의 연구소로 출범, 2010년 독립하며 상임연구원 전원을 의사, 보건경제 박사 등 전문가로 구성했다. 최근 국내외 최신 연구로 사회적 불평등과 건강 불평등의 상관관계를 설명한 책 ‘몸은 사회를 기록한다’(낮은산)를 펴냈다.

27일 동작구 사당로 연구소에서 만난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건강형평성센터장은 “장기 프로젝트를 주로 해서 일반에 연구소를 알릴 기회가 적었다. 논문 위주의 딱딱한 글쓰기에 익숙한 젊은 보건 전문가들이 일반의 눈높이에 맞춘 글쓰기를 선보이고, 건강 불평등에 대한 담론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2010년 연구소가 독립하면서 합류했다. 이전 직장인 을지의대 예방학과(조교수)에서 전공이 “사회적 조건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사회역학”이라 자연스럽게 건강형평성센터장도 맡았다. 김 센터장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진보 연구자들도, 보건 관련 시민단체도 많았다. 한데 대학 업적 평가, 논문 발표가 중요해지면서 의료 전문가들이 사회적 연구를 할 기회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미국만 해도 비정부기구 중 공적 성격의 재단이 많잖아요. 그 정도 규모는 아니라도 대학이나 정부가 긴장할 담론을 만들 기관, 보건 전문가들이 괜찮은 일자리로 몸 담을만한 기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여기 합류하게 됐죠.”

외부 기관과의 공동 연구,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보건의료 관련 세미나와 강좌를 열기도 하지만, 연구소는 “밑도 끝도 없는” 장기 연구가 중심이다. 작년부터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정부 고용위기지역 지정 절차를 밟고 있는 거제 시민들의 건강을 연구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영국의 맨체스터, 미국의 디트로이트처럼 산업화가 붕괴되며 나타난 현상과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정규-비정규직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누구나 실업을 받아들이는 비관적 상황 등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질문을 보완하고 관찰하고 있다. 이르면 내년 말 1차 연구 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건강형평성센터장. 배우한 기자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건강형평성센터장. 배우한 기자

상임연구원, 회원 등 12인이 공동 집필한 신간은 “후원 회원 350여명의 회비로 운영되는” 연구소가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려는 시도다. 공중보건 분야의 최신 연구를 일반의 눈높이로 소개하며 차별과 부패, 제도와 기술, 정치와 사회구조가 국민 건강을 좌우하는 현실을 입증한다. ‘소진 증후군은 소득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더 많이 나타난다’, ‘낙하산 기업의 노동자가 더 많이 죽는다’ 같은 심증이 물증(연구서)으로 드러난 경우도 있지만 예상을 벗어난 결과도 많다. 동성애를 혐오하면 할수록 사망 위험도 높아지고, 퇴근 후 추가 가사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전일제 여성 근로자가 시간제 여성 근로자보다 더 건강하다. 해외 연구와 뚜렷하게 차이를 지닌 ‘한국적 특징’도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결혼 출산으로 30~40대 여성 고용률이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 등이다. 김 센터장은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엄마의 건강을 향상하기 위해 필요한 건 ‘여성 친화적 일자리’가 아니라 차별 없는 안정적 일자리”라며 “노동시장 구조 자체를 바꾸는 정책이 없다면 육아휴직, 주 52시간 근무 같은 복지정책을 확대할수록 노동자 간 불평등이 더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득이 불평등하면 건강도 불평등해지는 현상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거든요. 정책이 개입해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노동, 사회, 환경이 삶의 질, 건강과 연관돼있다는 걸 사람들이 더 많이 얘기할수록 (건강 불평등) 해결방안도 생길 겁니다. 이 책이 그런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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