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중국 책임론 제기에
북한 정권수립 70주년에 맞춰
평양 가려던 당초 계획에 차질
미국 의식 속 북중관계 개선 의지
외교가 “방북 자체는 기정사실화”
9ㆍ9절이냐 이후냐… 선택만 남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 정권수립 70주년(9ㆍ9절) 이후인 내달 중ㆍ하순쯤 북한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 지연을 ‘중국 탓’으로 돌린 미국을 의식하면서도 북중관계 개선 의지를 분명히 보여줄 수 있는 시점을 고민한 결과다.
베이징(北京) 외교가에서는 시 주석이 답방 형식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것 자체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 상반기에만 세 차례나 중국을 방문했고, 시 주석도 평양 초청을 수용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기다. 최근 중국 대외연락부 관계자들이 평양을 찾아 시 주석 방북 문제를 논의한 가운데 싱가포르와 일본 언론들은 시 주석의 9ㆍ9절 계기 방북 가능성을 보도해왔다. 하지만 지난 2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전격 취소하면서 ‘중국 책임론’을 거론한 뒤 시 주석 방북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됐다.
이와 관련, 중국 외교부에 정책 자문을 해온 한 인사는 27일 “시 주석의 방북은 오래 전부터 준비돼온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책임론 제기에 직접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며 시 주석의 방북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는 “외교적으로 극히 민감할 수 있는 대규모 열병식이 예정돼 있고 다른 나라 국가수반들도 참석하는 9ㆍ9절은 아닐 것”이라며 “북중관계를 고려해 9ㆍ9절에는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중 한 명을 보내되 시 주석 답방은 양국이 최적기로 상정해온 9월을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인사는 특히 “김 위원장이 시 주석을 만나 비핵화 시간표를 제시한다면 중국의 한반도 역할론이 크게 주목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도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가 시 주석 방북에 미칠 영향에 대해 “가면 가는 것이고 안 가면 안 가는 것”이라며 “그것(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 때문에 당초 계획이 영향을 받겠느냐”고 말했다. 방북 시기는 다소 유동적일 수 있지만 방북 자체는 이미 상수로 굳어졌다는 얘기다. 다른 소식통도 “중국 정부가 시점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시 주석의 방북 여부에 대해 공개적으로 부인하지 않고 있는 만큼 방북 가능성은 크다”면서 “다만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 9ㆍ9절 열병식 등 복잡한 변수가 많아 현재로선 시기를 못박아 얘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중국의 외교관례상 시 주석의 9ㆍ9절 계기 방북 여부는 다음달 초면 확인될 예정이다. 중국은 국가주석의 경우 통상 해외순방 일주일 전에, 상무위원은 5일 전에 일정을 공개한다.
물론 시 주석이 미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감수하고 9ㆍ9절에 맞춰 방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전ㆍ현직 지도부의 비밀회동인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대미 강경대응 기조를 확인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이고, 무역전쟁 장기화에 대비해 북한을 지렛대 삼아 반격을 가해야 할 필요성도 있기 때문이다. 일정상으로도 9ㆍ9절 이후엔 러시아 동방포럼, 남북 정상회담, 유엔총회 등이 예정돼 있어 시 주석의 방북 효과가 분산될 가능성도 있다. 일각의 예상처럼 시 주석의 답방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 시간표를 제시한다면 북한과 중국 모두 ‘윈-윈’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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