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90%가 연금 개혁 철회 촉구
푸틴 지지층인 중장년들이 반발
다음달 러 전역서 시위 예고되자
확산 막기 위해 나발니 전격 연행
러시아의 차르(황제)로 군림하던 천하의 푸틴이 연금 개혁 앞에서 떨고 있다. 다음달 러시아 전역에서 대규모 반대 시위가 예고되자, 야당 지도자를 전격 체포하는 등 공포정치에 시동을 걸고 나섰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인 중장년층이 등을 돌렸다는 점에서, 연금 개혁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5일(현지시간)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모스크바 교외 자택에서 체포됐다. 나발니의 대변인인 키라 야르미쉬는 트위터에 “나발니는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슬리퍼와 반바지 차림으로 연행됐다”며 “연금 개혁 반대 시위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붙잡아 간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발니는 러시아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 개혁에 항의하기 위해 다음달 9일 모스크바를 비롯한 100개 도시에서 연대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푸틴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비판해 온 나발니는 수 차례 수감됐는데, 지난 5월에도 30일 구금됐다 풀려났다.
그간 야권의 온갖 비판에도 꿈쩍도 안 하던 푸틴 대통령이 발 빠르게 선제 대처에 나선 데는, 연금 개혁이 그만큼 폭발력이 큰 이슈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가 지난 6월 월드컵 개막일 전날 슬그머니 내놓은 연금 개혁의 골자는,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남성은 60세에서 65세로, 여성은 55세에서 63세로 각각 5년과 8년씩 높이는 것이다. 현재 매달 지급되는 평균 연금액 22만원(1만3,342 루블) 역시 줄어들게 된다. 구소련 시절인 1928년 만들어진 이후 90여년간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한 성역을 건드린 것이다.
러시아 정부는 노동 인구는 줄고, 노령 인구는 증가하는 고령화로 인한 기금 적자를 메우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민간 여론조사 기관 레바다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 중 90%가 연금 개혁안 철회를 촉구했고, 40%는 반대 집회에 직접 참석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공고하던 푸틴 대통령 지지율 역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연금 개혁안이 발표된 지 2주 만에 77%에서 63%로 떨어졌다.
특히 당장 정년이 늘어나는 중장년층의 반발이 거셌다. 연금 개혁은 없다던 푸틴 대통령 말만 철석같이 믿다가 뒤통수를 맞은 이들은 “일만 하다 죽으라는 거냐, 왜 받지도 못하는 보험료를 내야 하냐”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러시아의 평균 기대수명은 남성은 66세, 여성은 77세로 연금 수급 전에 대다수가 사망한다는 게 이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 국민에게 푸틴은 자신들을 지켜 주는 ‘보호자’로 각인돼 있었지만, 연금 개혁안으로 이 같은 믿음이 산산조각 났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대신 국가적 자부심과 경제적 안정을 대가로 버텨 온 푸틴의 통치 방식이 시험대에 올랐다”며 푸틴 대통령이 국민적 반발을 의식해 연금 개혁 법안을 수정하는 등 타협점을 모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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