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 발표 다음날에 분위기 급변
펜스ㆍ성 김ㆍ폼페이오ㆍ앤드루 김 등
극소수 인사 불러 전격 취소 결정
상당수 고위직은 TV 통해 접해
이번에도 예측을 불허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진면목이 발휘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 방문을 공식 발표한 지 하루 만인 24일(현지시간) 오후 이를 취소한 ‘깜짝 결정’이야기다.
CNN과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번 방북 취소는 매우 급박하게 이뤄졌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해 신뢰를 표시한 트럼프 대통령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가 공개된 건 지난 20일. 23일 오후 국무부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공식 발표할 때만해도 이상 징후는 없어 보였지만 24일 오전쯤부터 분위기가 급변했다.
CNN에 따르면 이날 오후 폼페이오 장관과, 앤드루 김 CIA 코리아미션장이 백악관 웨스트윙(집무공간)으로 들어가는 게 포착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폼페이오 장관과 방북 취소 트윗 문구를 상의했고, 오후 1시40분께 취소 트윗을 올렸다.
이번 결정은 극소수만 알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상당수 고위 관리가 이 소식을 TV를 통해 접했으며, 일부는 방북 후 대북 협상을 준비하는 모임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결정이 나기 불과 10분 전까지도 국무부 관리들은 방북계획을 동맹국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고 CNN은 전했다.
댄 스커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국장이 24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로 공개한 사진을 보면 이번 결정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북한 관련 오벌오피스(집무실)오후 회의 막후’라는 제목으로 사진 4장을 공개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전용책상에 앉아 있고 그 앞에 부채꼴 모양으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 성 김 주 필리핀 대사, 폼페이오 장관, 스티브 비건 신임 대북정책 특별대표, 앤드루 김이 앉아 있다. 이들 뒤쪽으로는 세라 허커비 샌더스 대변인 등 참모진 4명이 소파에 앉아 메모를 하고 있으며 존 켈리 비서실장도 소파 옆쪽에 기대 서 있다. 샌더스 대변인은 CNN에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스피커폰을 통해 대통령의 결정과정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6ㆍ12 북미정상회담의 성과를 비판하는 미국 주류 언론에게 “더 이상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은 없다”며 반박하고, 협상이 진전되고 있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돌연한 결정은 이번 방북에서 얻어낼 게 없다고 최종 판단했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당초 폼페이오 장관 방북 방침이 공표되면 북한의 긍정적 화답을 기대했으나, 그 이후에도 아무런 메시지가 없거나 오히려 상반된 반응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와 관련,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 군축담당 특보는 미국의소리(VOA)와의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으로부터 어느 정도 긍정적 신호를 받기를 원했지만,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폼페이오 장관이 다시 북한을 방문해도 빈손으로 돌아온다면 (트럼프는) 정치적으로 너무나 수치스럽게 돼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VOA에 “폼페이오 장관이 재방북해도 북한은 어떤 것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트럼프 대통령이 들었을 수 있다”면서 “빈손으로 돌아오는 것보다 방북을 취소한 것이 현명했다”고 평했다.
비핵화 협상 답보에 답답함을 느낀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적인 판흔들기일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은 사적으로 비핵화 협상에 대한 점증하는 실망감을 표시해왔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은 이번 방북 취소 결정도 트럼프 특유의 협상 전략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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