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지난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 선고에서 박 전 대통령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70억원을 요구한 데 대한 ‘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신 회장의 항소심 결심 공판을 앞둔 롯데그룹에 긴장과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올 초 신 회장의 법정 구속 이후 사실상 투자가 멈춘 롯데그룹의 앞날에도 먹구름이 짙어지는 분위기다.
26일 법조계와 롯데그룹 등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8부는 오는 29일 신 회장에 대한 항소심 결심 공판을 갖는다. 앞서 신 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면세점사업 등 그룹 현안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고, 그 대가로 최순실씨가 지배하는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건넨 혐의(뇌물공여)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70억원 모두 뇌물이라 판단하고 신 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해 법정 구속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2심 판결 등을 감안하면 신 회장이 항소심에서 풀려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 2월 신 회장이 법정 구속되면서 롯데그룹의 투자와 채용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롯데그룹은 최근 10년간 매년 5조~10조원 가량을 투자하고 평균 1만3,000여명을 채용해왔는데 올해는 총수 부재로 투자ㆍ채용 계획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롯데가 올해 국내외에서 검토한 인수ㆍ합병(M&A)은 10여건에 11조원 규모나 됐지만 신 회장 수감으로 모두 연기하거나 포기했다.
롯데케미칼이 4조원을 들여 짓는 인도네시아 초대형 석유화학단지 건설 사업도 신 회장 구속 이후 반 년째 중단된 상태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사업은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만큼 검토하고 조율할 내용이 많고 전략적 결단도 필요한데 최종 결정권자가 없으면 진행이 더뎌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롯데는 지난 2016년 비자금 조성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미국 화학회사 액시올 인수를 포기해 투자 기회를 놓친 적이 있다. 이후 엑시올 주가는 2배 가까이 뛰었다.
그룹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작업도 신 회장의 수감으로 멈춰 섰다. 지주사 출범 2년 내에 롯데손해보험, 롯데카드 등 금융 계열사 지분을 처분해야 하지만 아직 시작조차 못한 상태다.
신 회장의 항소심 결심 공판에 대해 롯데그룹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2심 재판 과정에서 새 증인ㆍ증거가 제출된 만큼 다른 판단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며 기대를 걸고 있다. 항소심 선고는 구속기한 만료 전인 10월 초 내려질 전망이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