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작가 이강소 설치전 ‘소멸’
낡은 선술집을 통째로 옮겨와
무심코 지나친 일상을 재해석
“작가는 멍석 깔고 관객이 해석”

냄비 눌은 자국과 담배 지진 자국, 낙서, 파인 홈 등이 고스란히 남은 낡은 선술집 탁자와 의자가 서울 한복판 갤러리에 마련됐다. 실제로 양은 황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한 사발에 2,000원씩 사 마실 수 있어 선술집에 온 것 같은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낡은 선술집을 통째로 갤러리로 옮겨온 이는 ‘오리 그림’으로 유명한 이강소(75) 작가다. 그는 “일상에 친숙한, 무심코 지나쳤던 상황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고 작품 ‘소멸(선술집)’을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작품은 그의 경험에서 시작됐다. 1973년 선배와 선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던 작가는 “선술집에서의 왁자지껄함, 사람들의 취기 이런 것들은 모두 다 보이는데, 정작 나 자신은 나를 볼 수 없고 어떤 상태에 있는지 증명할 수도 없었다”며 “그 생각 끝에 모두 각자가 느끼는 대로 각자의 세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관객에게도 일상의 행위를 전시장에서 다시 체험하고 반추해볼 것을 제안했다. 이 작가는 “나의 모든 작품은 보는 사람과의 관계, 보는 사람에게 작용하는 관계를 중시한다”고 했다.
작가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자연질서를 주제로 한 설치 작품도 여럿 선보인다. ‘무제-75031’는 횟가루가 뿌려진 전시장에 닭을 풀어놓고 그 흔적을 보는 작업이다. 닭은 사흘 뒤 농장으로 간다. 관객은 횟가루 위에 남겨진 발자국과 사진을 통해 존재와 의미를 유추한다. 작가는 “흔적만으로 닭인지, 어떤 닭인지, 왜 움직였는지, 어떻게 움직였는지 등을 관객 저마다의 시선으로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달 4일부터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소멸’은 이강소가 1970년대 선보였던 실험적인 설치 작품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전시다. 주요 설치작품 10점과 최근 작업한 회화와 흙으로 빚은 추상 조각 등도 접할 수 있다.
작가는 1973년 명동화랑에서 ‘선술집’을 설치해 첫 개인전을 연 뒤 다양한 실험을 했다. 74년 한국실험작가전에서 멍석을 깔고 사과를 판매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75년 파리 비엔날레에서 닭을 전시장에 풀어놓았다. 80년대 후반부터는 추상 회화작업에 매진해왔다. 서울대공원에서 포착한 오리의 파닥거림에서 영감을 얻어 오리를 회색의 선과 면으로 리드미컬하게 그려낸 ‘오리 그림’으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멍석론’으로 설명한다. “저는 멍석을 까는 작가에요. 멍석만 깔아주면 그 이후에 자유롭게 상상하고, 움직이는 건 관객의 몫입니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에요, 암시하는 것이지요.” 전시는 10월14일까지.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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