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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인간안보의 새 모델

입력
2018.08.2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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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는 확대되고 있지만 때로 부침이 있다는 게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비록 지금 하강국면이긴 하지만, 그것은 세계화를 만악의 근원이라고 하는 무책임한 정치 지도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독선을 향수로 둔갑시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포퓰리스트는 “주권”과 “안보”를 위해 벽을 쌓고 국경을 폐쇄한다고 주장한다.

국민국가가 인류 문제의 책임을 방기할 것이라 여기는 건 순진하지만, 마찬가지로 브렉시트나 트럼프 선거로 국민국가가 다시 모든 걸 지배하리라 보는 것 또한 순진하다. 밀접하게 연결된 세계화가 뒤집힌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안보 영역에서는 이 상호연결성의 부정적 측면을 직시해야 한다. 시행 중인 법제는 오늘날의 위협에 대응하기에 부적절하다. 그건 브렉시트나 트럼프가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다.

런던정경대의 크리스틴 친킨과 메리 칼도는 그들의 책 ‘국제법과 새로운 전쟁’에서 국제ㆍ비국제 무력 분쟁의 전통적 차이가 의미를 잃었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내ㆍ외부의 안보를 연속체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킨과 칼도는 시리아 분쟁 같은 “새로운 전쟁”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국내외의 다양한 배역을 포함하고 국경을 초월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국경초월 현상은 이슬람국가(IS)의 이라크 장악이나 여러 국가의 IS 공격에서 잘 드러난다. 새로운 전쟁은 인종, 종교 또는 종족의 요소가 강하고 오래 지속되며 민간인을 제물로 삼는다.

국내 분쟁의 급증으로 국경 내에서 국가가 합법적 무력 사용을 독점한다는 베스트팔렌 주권 모델은 무의미해졌다. 진정 국제사회 건설을 원한다면 권위만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관점에서도 주권을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자국민을 위협하는 정부가 있는 국가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이것이 2005년 유엔총회가 채택한 “보호책임”(R2P) 원칙의 토대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도주의적인 이유로 정당화된 군사적 개입의 초점은 군사전술이다. R2P는 예방과 재건의 책임을 포함하지만 이는 보통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2011년 리비아와 코트디부아르에서 R2P를 토대로 “필요한 모든” 방식의 개입을 승인했다. 하지만 그 개념을 이용해 체제 교체를 감추려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 이후 R2P는 권력의 특권으로 낙인 찍혔다. 집단적 의무라기보다 권위를 인정 받지 못하는 권리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건 빗나간 것이었다. 유엔안보리가 시리아 위기에 대응하는 제대로 된 회의를 소집하지 못한 것은 유감스럽게도 과거 다른 나라에서 있었던 과도한 개입의 유산이다. 인도주의는 여전히 지정학의 후순위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이라크나 리비아 같은 과도한 개입과 르완다와 스레브레니차에서처럼 학살을 두고만 보는 부작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일까. 트럼프 정부는 분명 이 두 가지 옵션만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미국 정부는 고립주의자들과 정권교체 문제에서 거듭 실패하고도 개의치 않는 존 볼턴 안보보좌관 같은 신보수주의 매파로 확연히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인도주의적 개입을 위해 논쟁적인 프레임을 감수해서도, 개선 가능하고 동시에 세계 각 지역을 변화시키는 국제법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친킨과 칼도는 가부장주의에 의지하지 않는 개인의 보호를 국가보다 우선하는 실행 가능한 안보모델을 제안한다.

이 모델이 성공하려면 단편적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안보에 적용해야 한다. 여성과 기타 구조적으로 취약한 집단을 포함해 피해 받는 사람을 우선해야 한다. 군축을 강조하면서 비군사적 수단을 선호해야 한다. 인권 윤리와 “새로운 전쟁” 논리에 부합하는 합법적 장치에 확고하게 기초해야 한다. 그리고 R2P를 대신할 “인간안보” 개념으로 보호 받을 권리를 확립해야 한다.

이 모델은 불가능하지 않다. 실제로 R2P와 인간안보 모델은 선도적인 사상가와 코피 아난 같은 세계시민의 지원에 힘입어 함께 발전해왔다. 유럽 안보력 연구그룹은 인간안보 모델의 핵심 원칙 중 상당수를 정리해 2004년 바르셀로나에서 “유럽 인간안보 원칙”을 내놓았다. 3년 뒤 인간안보 연구그룹의 ‘마드리드 보고서’는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것이다. 연구그룹은 특히 유럽연합의 대외 임무 확장 지침을 제시했다. 인권감시기구와 주민회의 형태의 협의를 활용하도록 권한다. 그러나 R2P와 마찬가지로 인간안보 원칙은 사용 불능 상태다. 지정학과 군사행동 위주의 다양한 대테러전의 뒷전으로 밀려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에서는 지정학적 대변동에 이어 국제법의 큰 틀이 변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민간인이 사이버전쟁 같은 새로운 위협에 갈수록 취약해질 때 인간안보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은 이상주의가 아니라 긴급한 필요다. 인간안보 측면에서 전세계에 걸쳐 늘어나는 새로운 분쟁을 관리하기 위한 포괄적이고 협력 가능한 전략을 개발할 수 있다. 세계화는 되돌릴 수 없다. 그 세계화의 부정적인 결과를 줄이려 한다면 방법은 단 한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강화하는 것뿐이다.

하비에르 솔라나 전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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