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평생 간직한 누나 꽃자수, 이제는 드려야지.”
25일 금강산호텔에서 이산가족 개별상봉을 기다리던 황보구용(66)씨는 북측 북측 이부(異父)누나 리근숙(84)씨와 만남을 앞두고 색이 바랜 꽃자수 천 조각을 매만졌다. 리씨가 옛날에 집에 남겨두고 갔다는 꽃자수로 남매의 어머니는 이를 평생 보관하다 황보씨에게 물려줬다. 오전 10시부터 약 2시간가량 호텔 객실에서 남북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며 선물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이날. 황보구용 씨는 “어머님이 평생 한집에서 누님을 기다리며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놓고 (누나의 귀환을) 비셨다”며 모친이 바라보던 누나의 사진과 꽃자수 등을 선물로 줄 것이라 말했다.
전날 빗줄기를 뚫고 금강산까지 무사히 온 이산가족 상봉단을 환영이라도 하듯 이날 금강산 수정봉 언저리엔 무지개가 떴다. 태풍 걱정은 온데간데 없이 구름도, 바람도 적당한 가을 날씨였다.
호텔 객실에서 가족들만의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생각에 남측 가족들은 아침부터 들뜬 모습이었다. 북측 라종주(72) 씨와 상봉한 남측 사촌 김상암(51) 씨는 “오붓하게 단체상봉 때 하지 못했던 말을 할 수 있게 돼서 기분이 좋다”면서 “어제 여러 가지 얘기 잘 했고 개인적으로는 누님이 잘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좀 놓였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남측 동생들을 만난 리숙희(90) 할머니의 북측 아들 김영길(53) 씨는 개별상봉을 앞둔 소감을 묻자 “기쁘다. 한 번이 아니고 북남이 모여 사는 영원한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 씨의 손에는 개성고려인삼제품 한 상자와 다른 선물이 든 것으로 보이는 가방 하나, 가족사진 액자 등이 들려있었다. 북측 당국이 준비한 백두산 들쭉술, 평양주, 대평주 등의 선물과는 별도로 준비한 것으로, 이렇게 따로 개인적 선물을 준비해온 북측 가족들이 많았다.
남측 최고령자 강정옥(100) 씨의 동행가족인 딸 조영자 씨도 “(어머니) 컨디션이 좋다”면서 “방해받지 않고 상봉하게 돼서 기분이 좋다”고 즐거워했다. 북측 형이 죽은 줄 알고 상봉 대상자 선정 통보 사흘 전 제사도 지냈다는 남측 한상엽(85) 씨는 ‘제사 지냈다는 얘기를 전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형이 웃으면서 ‘산 사람 제사를 지내줬으니 오래 살겠다’라고 하더라”라고 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ㆍ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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