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배우 오드리 토투 주연의 ‘히 러브스 미(He Loves Me)’란 영화가 있다. ‘아멜리에’로 스타덤에 오른 토투가 특유의 깜찍한 미모와 톡톡 튀는 매력을 마음껏 발산했던 작품인데, 2003년 국내 개봉 당시 ‘사기 홍보’ 논란을 불러일으켰었다.
여주인공 ‘안젤리끄’가 유부남 심장전문의 ‘뤼끄’를 짝사랑해 그의 뒤를 수줍게 따라다니는 전반부와 달리, ‘뤼끄’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후반부에서 ‘안젤리끄’가 ‘뤼끄’의 광기어린 스토커였다는 충격적인 반전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제목부터 당연히 로맨틱 코미디인 줄 알았던 이 영화의 원 제목은 ‘히 러브스 미, 히 러브스 미 낫(He Loves Me, He Loves me Not)’으로, 뚜껑을 열어보니 원 제목이 슬쩍 암시하듯 매우 섬뜩한 사이코 스릴러였다.
결말부 여주인공의 해맑은 미소를 떠올리면 지금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안젤리끄’는 강제로 입원당한 정신병원에서 치료용 알약을 꼬박꼬박 먹는 척하며 몰래 모아 ‘뤼끄’의 초상화를 콜라주하고, 퇴원후 발걸음도 가볍게(?) ‘뤼끄’를 찾아 나선다.
사랑은 객관적인 팩트가 아니며 또렷한 실체가 없다. 당사자 모두가 동의하지 않는 한, 관련된 각자가 제 멋대로 그리는 ‘심상(心象)’일 뿐이다. 누군가에겐 한없이 따뜻하고 애틋하며 절대적인 사랑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극도로 잔인한 폭력 혹은 불쾌한 경험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걸 ‘히 러브스 미’는 이야기한다.
SNS를 통한 사진 공개의 경위와 관련해 모 남녀 연예인이 벌이고 있는 폭로전을 지켜보며 참으로 우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남자는 “사랑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여자는 “아니었다”며 반박하는 지금 상황에서 이들이 어떤 관계였는지 스포츠 중계하듯 파헤치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 대중은 그들이 어떤 관계였는지 얼마만큼 궁금해할까? 태생적으로 선정적일 수밖에 없는 연예 기삿거리의 성격을 같은 업계 종사자로 어느 정도 이해하고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문제의 진짜 심각성은 양쪽의 사생활을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동의 없이 아주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공개했다는데 있다. 경위와 상관없이 그같이 먼저 행동한 쪽은 충분히 지탄받고 반드시 처벌받아야 하는 이유다.
사랑이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가뜩이나 사생활 보호의 중요성과 당위성이 강조되는 요즘, 자신의 사생활이라고 해서 관련된 상대의 동의없이 멋대로 까발리는 행위는 책임과 제재를 감수해야 한다.
반복하지만 사랑은 팩트가 아니고 실체도 없다. 그러나 범죄는 팩트이고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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