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늪에 빠진 패션 업체들이 생존을 위해 본업인 패션 외에 다른 업종으로 진출을 활발히 모색하고 있다. 사업 다각화에 적극적인 업체들과 그렇지 않은 업체 간 실적 격차도 점차 벌어지고 있어 ‘생존을 위해서는 외도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패션업계에서 확산하는 분위기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패션업체 LF는 최근 국내 3위 부동산신탁회사인 ‘코람코자산신탁’ 인수 관련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LF는 코람코 창업자인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보유한 코람코 지분 5.43% 등 모두 46%의 지분을 약 1,600억원에 인수해 부동산 신탁 시장에 뛰어든다.
부동산신탁은 부동산 소유자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부동산의 관리ㆍ처분ㆍ개발 등을 대신 해주는 사업으로 패션업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LF는 진행하고 있는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부동산 신탁 사업을 전략적으로 선택했고 이를 장차 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키울 계획이다.
사실 LF는 이미 다양한 사업들을 운용하면서 패션 기업 이미지를 상당히 벗은 상태다. 2006년 LG그룹과 계열분리를 한 LF는 푸드, 방송, 호텔, 식자재 유통 등 다양한 신사업을 벌여왔다. 올해 초에는 주주총회를 통해 주방용품, 가구 제조 등을 사업 목적에 새로 추가하고 신사업 목록을 10여 개로 늘렸다. 구본걸 LF 회장은 지난 2014년 LG패션이라는 사명을 LF(Life in Future의 줄임말)로 바꾸고 패션회사라는 타이틀을 벗어 던졌다.
LF의 활발한 사업 다각화는 실적 개선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패션업체가 내수 침체와 경기 불황의 영향으로 실적이 악화하는 동안에도 LF는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부동산 신탁이라는 새로운 업종으로의 진출 결정도 그동안의 사업 다각화 결과를 바탕으로 한 구 회장의 자신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올해 상반기 주요 패션업체 중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개선된 업체는 사업 다각화에 적극적인 LF와 신세계인터내셔날(SI) 정도다. SI의 화장품 브랜드 ‘비디비치’ 매출액은 2012년 19억원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229억원으로 8배 가까이 늘어나 실적 개선의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SI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도 261억원으로 전년 대비 3배 늘어 패션업체 중 가장 뛰어난 수익 개선을 이뤘다.
반면 패션사업에만 집중해온 삼성물산(패선사업부문)과 코오롱인더(패션군) 등은 매출과 영업이익 등이 소폭 늘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
심문보 삼성물산 부장(패션사업부문)은 “패션과 관계없는 신사업 대신 부진한 브랜드 구조조정, 제조ㆍ유통일괄형(SPA) 브랜드를 통한 해외 진출 등으로 실적 개선을 꾀하고 있다”며 “구조조정 여파가 마무리되고 해외 사업 등이 자리를 잡으면 조만간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업 다각화로 재미를 본 패션 업체들이 점차 늘어가면서, 패션 외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리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패션그룹형지는 ‘까스텔바쟉 홈’을 통해 홈퍼니싱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패션브랜드 세컨스킨도 홈 브랜드 '세컨룸'(SEKANROOM)을 론칭하고 홈퍼니싱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밖에 현대백화점의 한섬, 패션기업 세정 등은 신발 유통 사업에 진출해 성과를 내고 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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