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솔릭으로 걱정이 많은 밤, 한국 남자 축구가 모처럼 멋진 경기로 팬들에게 위안을 줬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아시안게임 남자축구대표팀은 23일(한국시간) 인도네시아 치카랑 위바와 묵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란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16강전에서 ‘숙적’ 이란을 2-0으로 눌렀다.
한국은 오는 27일 이번 대회 가장 강력한 우승부호로 꼽히는 우즈베키스탄과 준결승 진출을 다툰다. 우즈베키스탄은 앞서 벌어진 16강에서 10명이 뛴 홍콩을 3-0으로 가볍게 이겼다.
이란은 주장인 골키퍼 메흐디 아미니 자제라니(22)를 뺀 19명이 21세 이하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내다본 멤버다. 그러나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이란은 국제 대회에서 늘 고비마다 한국을 괴롭히곤 했다. 이날 전까지 아시안게임 역대전적도 두 팀이 3승2무3패로 팽팽했는데 한국이 한 발 앞서게 됐다.
한국과 이란은 ‘장군’ ‘멍군’을 부르듯 전반 중반 한 차례씩 골대를 때리며 팽팽히 맞섰다. 전반 16분 이란 델피가 때린 왼발 슛이 크로스바에 맞고 나오자 2분 뒤 황인범(22ㆍ아산)은 포스트를 강타하는 강력한 오른발 슛으로 응수했다.
전반 40분 선제골이 나왔다.
김진야(20ㆍ인천)의 전진 패스를 받아 황인범이 기막히게 가운데로 땅볼 크로스를 내줬고 황의조(26ㆍ감바오사카)가 군더더기 없는 논스톱 슛으로 그물을 갈랐다. 골대 앞에 몰려 있던 5~6명의 이란 수비수들을 모두 허수아비로 만든 작품 같은 공격 전개 과정이었다.
후반 9분 이승우(20ㆍ베로나)가 한 골을 보탰다
상대 진영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높게 뜬 볼을 받은 이승우는 재치 있게 상대 수비수들을 제친 뒤 오른발 땅볼 슛으로 추가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두 번째 득점 뒤 한국은 골키퍼 조현우(27ㆍ대구)가 부상 당해 나가는 악재를 맞았다. 조현우는 후반 초반 상대 프리킥 상황에서 공을 처리하러 나왔다가 착지하며 이승모(20ㆍ광주) 발을 밟으며 무릎 부위에 부상을 당해 치료를 받고 경기를 재개했다. 그러나 잠시 뒤 도저히 못 뛰겠다는 듯 벤치에 사인을 보냈고 송범근(21ㆍ전북)으로 교체됐다. 송범근은 지난 17일 말레이시아에 1-2로 패한 ‘반둥 참사’ 때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며 큰 비판을 받았지만 이날은 불안한 모습 없이 무실점으로 잘 버텼다.
아시안게임 2연패를 노리는 김학범호의 최대 고비는 예상대로 우즈베키스탄과 8강이 될 전망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올 초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른 팀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조별리그와 16강 등 4경기에서 13골을 넣고 단 한 골도 내주지 않는 완벽에 가까운 경기력을 자랑하고 있다. 한국은 조현우의 부상 회복 속도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박항서 매직’은 계속됐다.
박항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베트남은 종료 직전 터진 극적인 결승골에 힘입어 바레인을 1-0으로 누르고 8강에 올라 기존 역대 최고 성적이었던 16강을 넘어섰다.
지난 1월 베트남을 AFC U-23세 챔피언십 준우승에 올려놔 AFC 주관대회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며 베트남의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박 감독의 주가는 아시안게임을 통해 더욱 치솟고 있다. 만약 한국과 베트남이 나란히 8강에서 승리하면 준결승에서 격돌한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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