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디와 헌터가 나를 찾는다.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 세이디는 내 손을 잡고, 헌터는 내 얼굴을 만진다. 세상에 이보다 더 행복한 순간은 없다. 나는 온몸을 불사르며 이 삶을 살고 있다.” 책 전체가 수식어를 최소화한, 몰아치는 현재형 단문들의 연속이다. 현실적으론 루게릭병 때문에 눈동자의 움직임만으로 글을 써야 하는 처지라 그렇다. 하지만 온몸을 불사르는 삶의 문장이란 원래 그렇다 싶기도 하다. 형용사, 부사 따위로 이러저리 너저분하게 꾸며 대는 문장은, 불사르는 삶과 어울리지 않는다.
어둠이 오기 전에
사이먼 피츠모리스 지음ㆍ장성민 옮김
흐름출판 발행ㆍ216쪽ㆍ1만2,000원
저자는 주목받는 젊은 샛별이었으나 루게릭병으로 죽은 영화감독. 루게릭병 판정을 받은 뒤에도 영화 ‘내 이름은 에밀리’를 제작해 찬사를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세이디와 헌터라는 넷째와 다섯째 아이를 쌍둥이로 얻는데 성공한 아빠이기도 하다. 힘겨운 와중에 문장을 이어 가는 이유도 간단할 게다. 아직은 죽지 않았기에, 어둠은 아직 오지 않았기에.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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