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원천무효 주장하지만
미국은 “끝난 얘기” 일축
지구상에서 미국에 군사력으로 맞설 수 있는 나라로는 유일하게 러시아가 꼽힌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014년 크림반도를 합병하고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미국에 버금가는 핵전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 러시아에게도 미국에 꼼짝 못하던 시기가 있었다. 구 소련이 붕괴하던 1990년대다. 특히 붕괴직전인 1990년 당시 소련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 때문에 영유권 분쟁에서 매우 치명적인 양보를 하게 된다. 베링행 지역에서의 영해 수역 경계를 확정 지은 ‘셰바르드나제-베이커’ 협약이다.
소련과 미국은 1990년 6월1일 추코츠키 및 베링해 지역에서 100년 가까이 남겨뒀던 해양 경계를 확정했다. 1867년 러시아 제국이 베링해 알류샨 열도를 알래스카와 묶어 720만달러를 받고 미국에 넘겼지만, 이후 100년간 먼 바다의 해상경계는 명확하지 않았다. 북위 65도30분, 서경 168도58분37초 지점에서 알류샨 열도의 서쪽 끝을 직선으로 잇는 선을 바다 경계로 한다는 데만 합의한 상태였다.
바다 경계를 모호하게 놔 둔 건 해양 영토 개념이 희박했기 때문이다. 19세기에는 육지에서 3마일까지만 영해로 인정됐고, 지금처럼 200마일로 늘어난 건 1970년 이후다. 이를 명시한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UNCLOS)이 국제법으로 인정된 건 1983년이다.
문제는 알래스카를 주고 받을 때 미국과 러시아가 두 지점을 잇는 ‘직선’이라고만 합의한 채 어떤 투영법의 지도를 적용하는지 합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마일 영해 문제를 놓고 소련과 미국이 협상을 시작했을 때 각각 다른 지도를 사용하는 바람에 생겨난 분쟁수역이 길이는 1,800㎞, 면적은 8만㎢에 달했다.
미국과 소련은 10년 넘게 협상을 벌였지만, 1990년 국력의 균형추가 무너져 소련이 대폭 양보한 뒤에야 타결됐다. ‘미국과의 협상을 빨리 타결하라’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뜻에 따라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당시 소련 외상이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과 (소련 입장에서는) 졸속 타협한 문서에 서명했다. 3만1,400㎢ 면적의 배타적 경제 수역과 4만6,300㎢ 대륙붕이 미국에 넘어갔다. 소련에 귀속된 대륙붕은 5,000㎢ 미만이었다.
‘셰바르드나제-베이커’ 협약이 어느 쪽에 유리했는지는 양국 의회의 반응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미국 상원은 관련 절차를 서둘러 마치고 1991년 9월16일 조약을 비준했다. 반면 소련 및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에서는 의회 비준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러시아 의회(두마)는 비준은커녕 1990년 이뤄진 합의가 원천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약한 고르바초프의 작품일뿐만 아니라 셰바르드나제는 협상권한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바다를 내준 건 물론이고 이 협약 이후 러시아 어부들은 많은 손실을 보고 있다. 협약 전까지 러시아 어선들은 매년 15만톤의 어류를 포획했지만, 이후 미국 연안 경비정의 강력한 제지로 황금수역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누적 손실이 20억~30억달러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협약이 무효라는 러시아와 달리 미국은 모두 끝난 얘기라며 러시아의 재협상 논의를 일축하고 있다.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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