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정박 중인 세바스토폴
올해에만 한국 11차례 다녀가
위반혐의 확인 땐 억류 등 조치
러 선박 타깃 검색은 이례적
“조사아닌 검색” 조심스러운 입장
전날 미국이 독자 제재 명단에 올린 러시아 선박을 상대로 정부가 22일 바로 칼을 빼들었다. 북한 석탄 반입 선박에 대해 미국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10개월이나 조치를 취하지 않던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신속한 대응이다.
정부는 현재 부산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 선박 세바스토폴에 대해 관계부처와 논의를 거쳐 검색 등 조처를 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혐의가 구체적으로 확인되면 억류 등 후속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회 예결위에 출석해 “유엔 대북 제재 결의이행과 관련한 별도의 특별법이 과연 필요한지 검토하고 있다”며 의지를 내비쳤다.
미 재무부는 21일(현지시간) 선박 간에 옮겨 싣는 방식으로 석유제품을 북한에 공급한 혐의로 러시아 해운 기업 2곳과 이들이 소유하거나 운용한 세바스토폴 등 러시아 선적 선박 6척을 제재 대상에 새로 포함시켰다.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6척 가운데 4척은 한국에 입항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세바스토폴호는 올해에만 포항과 부산 등에 11차례 다녀갔다.
민간 선박정보 사이트인 마린트래픽에서 확인한 결과, 세바스토폴은 11일 포항에서 14일 부산으로 이동해 항구에 머물며 정비를 받고 있다. 이외에 제재 대상인 보가티르호는 9차례, 파티잔호와 넵튠호는 각각 5회와 2회 한국을 드나들었다.
관건은 6척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 영토 안에 남아있는 세바스토폴호가 실제 안보리 제재를 위반했는지 여부다. 미 정부는 실제 이 선박이 북한에 석유를 전달했는지 구체적인 혐의를 적시하지 못했다. 다만 선박 소유회사가 제재 대상에 포함되면서 자산인 세바스토폴도 함께 명단에 올랐다. 결국 미국의 발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미국이 제재하는 선박에 대해 우리 정부가 반드시 행동을 취할 필요는 없다. 안보리의 제재 명단에 포함돼 모든 회원국이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경우와는 다르다. 따라서 안보리 결의 위반 여부를 확인하는 게 관건이다. 지난해 9월 채택된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2375호는 회원국이 선박 간 이전 방식으로 북한과 어떤 물품도 서로 주고받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관세청이 입항한 선박에 대해 국내법에 따라 검색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북한이나 중국이 아닌 러시아 선박을 타깃으로 한 것은 매우 드문 경우다. 이에 정부는 조사가 아니라 일단 선박을 검색해 문제점이 있는지 검토하겠다는 조심스런 입장이다.
대북 제재의 구멍으로 지목된 러시아는 발끈했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외무부 차관은 성명을 통해 “근거 없는 제재에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거짓 주장으로 러시아를 제재하는 미국의 나쁜 전통이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독자 제재 발표는 이달 들어서만 3번째다. 지난 3일 북한과의 불법 금융거래를 지원했다며 러시아 은행 1곳, 중국과 북한 회사 2곳, 북한인 1명을 제재했고 15일에는 북한의 담배 밀수 등을 도운 러시아, 중국, 싱가포르의 해운기업 3곳과 러시아인 1명을 명단에 올렸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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