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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대국민 토론, 독일은 탈정치 논의기구서 연금개혁 이끌어내

입력
2018.08.22 04:40
수정
2018.08.22 08:5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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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빈곤ㆍ재정 문제 닥친 영국

생중계로 시민 1075명 토론회

독일, 정부ㆍ노사ㆍ학계ㆍ시민 구성

유럽위원회서 10개월간 논의

#한국은 쟁점화때만 반짝 논의

“정부, 하루빨리 방향 정하고

국민에게 개혁 선택권 준 후

소득대체율 등 장단기 논의해야”

지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민연금 제도 개선 공청회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사회적 논의 기구 마련 등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민연금 제도 개선 공청회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사회적 논의 기구 마련 등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2006년 3월18일, 영국 역사상 가장 뜨거운 ‘대국민 토론’이 펼쳐졌다. 영국 정부가 연금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해 ‘전 국민 연금의 날(National Pensions Day)’ 행사를 열어 런던, 뉴캐슬, 버밍험, 글라스고, 남부 웨일즈, 벨파스트 등 6개 지역에서 시민 1,075명이 참여하는 토론회였다. 각 지역 토론회는 인공위성으로 연결 생중계돼 전국민이 지켜봤다.

당시 영국 정부는 심각한 노후빈곤과 연금재정 안정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2002년 독립기관인 ‘연금위원회’를 꾸려 제도 대수술을 맡겼다. 연금위원회는 국민들도 연금제도가 직면한 문제를 이해하고 자신의 노후에 대처하도록 보고서를 만들어 홈페이지에 공개했고, 정부는 각 지역 및 전국 단위 토론회를 차례로 열어 이 사안을 공론화했다. 유학 시절 이를 지켜본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토론회가 거듭될수록 국민 관심이 증가해 거리에서도 삼삼오오 모이면 연금에 대한 얘기를 나눌 정도였다”며 “지속된 사회적 합의를 거쳐 2007년 완성된 개혁안은 정권이 교체돼도 그대로 이행됐다”고 말했다.

국가 연금제도 개편을 둘러싼 갈등은 우리나라만 겪는 일은 아니다. 저출산ㆍ고령화 위기로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려면 개혁을 피할 수 없어서인데, 국민 반감이 폭발하면서 정치적 쟁점으로만 흘러 좌초되는 일도 흔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연금 선진국들처럼 사회적 논의 기구를 통해 소모적 정쟁과 이해관계자간 충돌을 줄이고 국민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탈정치화 기구가 관건

실제 연금 선진국들은 탈정치화된 사회적 논의 기구에서 연금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2002년 독일은 은퇴세대가 늘어 연금재정 안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보건복지부 산하에 복지부 차관, 노사 대표, 학계, 시민단체 등 26명이 모인 유럽위원회를 설치해 10개월간 대안을 논의해 급여 수준이나 지급 시기를 조절하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동조정장치는 미래에 내가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을 알 수 없어 국민들에겐 훨씬 고통스럽지만 전문가 의견을 듣고 건설적 토론을 통해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공무원공제연금(공무원연금), 공제연금(사학연금)을 후생연금(일본식 국민연금)과 통합하는 공적연금체계를 개편을 위해 30여년간 단계적 합의 과정을 거쳤다. 일본의 공무원연금도 후생연금과 비교했을 때 급여 격차가 크고 재정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어 1980년대부터 통합 시도가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이에 2011년 정부ㆍ여당이 ‘사회보장개혁검토본부’를 만들어 사회적 합의를 주도했고, 공무원ㆍ교원 등의 반발이 적지 않았지만 “이대로 가면 국가 재정이 위험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모아지면서 통합이 가능했다.

정부ㆍ정치권 의지도 중요

우리나라도 2015년 국회에서 사회적 논의 기구를 꾸려 공무원연금을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개혁한 경험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개혁 의지를 밝히면서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공무원연금법 개정을 당론으로 채택했고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특별위원회를 꾸려서 거둔 성과다.

문제는 정치권이 지지율에 신경을 쓰며 관심을 거둬들일 때다.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면서 국회는 보장성이 높은 공무원연금과 낮은 국민연금 간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액)을 50%로 높이고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공적연금 강화 특별위원회’를 꾸려 5개월간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의 의지가 식으면서 논의가 미뤄지다 2개월 가량 활동하는데 그쳤다. 여야가 각자 주장만 되풀이하다 어떤 합의도 끌어내지 못한 상태였다. 당시 특위에 참여한 한 인사는 “정치적 쟁점이 되질 않으니 특위 활동에 의원들이 참여하지 않고, 관심을 갖는 언론도 없어 흐지부지됐다”고 전했다.

매듭 하나씩 풀어야

이번 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통해 제도발전위원회 위원들이 두 가지 안을 제시한 만큼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연내에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내년에 소득대체율 45% 선이 무너지면서 제도위가 제시한 2가지 안(45% vs 40%)의 전제가 허물어진다. 게다가 현 정부 임기 중반을 넘어서면 개혁 동력도 식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하루 빨리 개혁 방향에 대한 입장을 정하고 탈정치적인 국민 의견수렴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정해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통합연구센터장은 “사회적 대타협 기구를 만들어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적정성 논의는 단기 과제, 다층연금 체계 개혁은 장기 과제로 보고 차례대로 논의하면 된다”면서 “국민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만큼 더 늦기 전에 국민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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