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지적에 뒤늦게 바로 잡고
자산 처리하던 개발비, 회계 변경
오스코텍 등 자산ㆍ실적 대폭 줄어
자산비중 90%→0%까지 하락도
일각선 “비용 리스크 오히려 해소”
골다공증 치료제와 항암제 등을 개발하는 오스코텍은 지난 14일 사업보고서 정정공시를 통해 지난 3월 발표한 지난해 실적을 수정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기준 이 회사 자산 규모는 549억원에서 405억원으로 줄었고 영업손실은 16억원에서 58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회사 실적이 5개월 만에 하향 조정된 것은 신약 개발에 투입한 연구개발비용에 대한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당초 연구개발비 61억3,700만원 중 55억5,400만원(90.5%)를 자산으로 처리했다가 정정 보고서에서 100만원(0.0002%)만 자산으로 남기고 나머지는 비용 처리한 것이다.
국내 바이오 회사들이 줄줄이 회사 실적 수정에 나섰다. 시장에 출시될 가능성이 불확실한 제품의 개발에 들인 비용을 회사 재산(자산)으로 처리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금융당국의 지적에 부랴부랴 자산으로 책정했던 개발비를 비용 처리한 것이다. 시장 신뢰를 잃은 후에야 뒤늦게 실적 거품 걷어내기에 나선 회사들에 대한 비난 여론 한편으로, 바이오업계의 회계 투명성을 높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오스코텍 외에 차바이오텍, 메디포스트, 일양약품, 인트론바이오, CMG제약 등 코스피ㆍ코스닥 상장 바이오 기업들이 지난 14일 반기보고서 제출 시한에 맞춰 올해 초 공시했던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정정 공시했다.
차바이오텍은 전체 연구개발비 중 60.3%(53억187만원)를 차지했던 자산을 모두 비용으로 돌리면서 영업적자 규모가 13억원에서 67억원으로 급증했다. 차바이오텍은 지난 4월 사업보고서 제출 당시 연구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처리했다가 감사를 담당한 회계법인으로부터 ‘한정의견’을 받았다. 한정의견은 해당 기업의 재무제표에 회계기준 위반 사항이 포함돼 있다는 의미다. 메디포스트(500만원→36억원), 인트론바이오(17억원→20억원) 등도 회계 기준을 바꾸면서 적자폭이 늘어났다. 코스피 상장사로 정정 공시 대열에 합류한 일양약품은 2016년 영업이익이 231억원에서 225억원으로 줄었다.
바이오 기업들의 뒤늦은 재무제표 수정은 업계의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관행에 대한 비판이 비등한 데 따른 조치다. 바이오 기업의 신약 개발 프로젝트는 통상 임상 전(신약후보물질도출연구, 신약후보물질발굴), 전임상, 임상(1~3상), 정부 허가, 제품 판매의 단계로 진행되는데, 개발비를 자산으로 인식하는 시점은 임상 전 단계부터 임상 3상 이후까지 회사마다 제각각이었다. 구체적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이 제품 실현 가능성, 경제적 효과 등을 제가끔 판단해 회계처리를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상당수 회사는 개발 초기 단계부터 연구개발비를 자산으로 처리해 장부상 실적을 높여왔다.
그러나 시장 안팎에선 신약 개발 초기 단계에서부터 개발 비용을 자산화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신약 개발 특성상 사업이 장기간 진행되는 데다 임상에 돌입한다고 하더라도 성공 확률이 극히 낮다는 점에서다. 실제 미국바이오협회가 2006~2015년 진행된 7,455개 임상 프로그램을 조사한 결과 임상 1상 단계에 있는 신약이 판매 승인까지 이어진 비율은 9.6%, 임상 3상의 경우도 49.6%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연구개발비를 자산에 편입하는 관행이 지속되자 금융감독원은 최근 제약ㆍ바이오 업계를 대상으로 ‘개발비 인식ㆍ평가의 적정성’ 항목에 대한 테마감리에 나섰다.
금융당국까지 나서자 바이오 기업들은 부랴부랴 정정 공시를 통해 개발비의 자산 인식 단계를 임상 3상~정부 승인 수준으로 높였다. 프로젝트가 전임상 단계를 통과했을 때부터 개발비를 자산 처리했던 차바이오텍의 경우 임상 과정을 거쳐 정부 승인이 완료된 시점부터 자산 처리하기로 기준을 강화했다. 메디포스트, CMG제약 등도 임상 3상 이후 지출한 개발비 중 정부 승인 가능성이 높은 항목만 자산 처리하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바이오 업계의 늑장 회계기준 변경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실적 부풀리기 욕심에 불합리한 관행을 고수해 오다가 금융당국이 공시 강화 방침을 밝히자 뒤늦게 회계기준을 바로잡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그동안 바이오 주가를 눌러왔던 회계처리 논란이 이번 집단 정정 공시를 통해 한 고비 넘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태희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금감원의 회계 감리가 향후 제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상장사들의 자발적 정정 공시로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말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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