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저축은행중앙회 재무팀장 OOO입니다. 나이, 재직기간, 4대 보험 유무, 월 급여수령액, 현재 사용하고 계신 대출기관과 대출금액 기재 부탁 드려도 될까요?’
지난해 8월 직장인 A(32)씨는 지인을 통해 수익률 높은 금융상품을 판매한다는 B(29)씨를 소개 받았다. B씨는 카카오톡으로 상품 가입방법과 혜택을 자세히 설명했다. 시중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아 특정 계좌로 송금하면 해당 금액의 10%를 A씨에게 인센티브로 지급하고, 대출 원금과 이자는 3~5개월 내에 없애주겠다는 내용이다. 지나치게 높은 수익률에 의심이 가긴 했지만, B씨가 내보인 저축은행중앙회 출입증에 믿음이 갔다.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이유는 ‘본인의 실적을 쌓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언뜻 보면 금융회사가 대출 원금을 갚아주는 형식의 일반 금융상품 홍보 같지만, 실체는 허위 상품을 이용한 사기행각이었다. B씨는 중학교 동창생들을 상대로 이 같은 방법으로 돈을 받아낸 뒤, 실제 원금과 이자를 갚아주며 신뢰를 쌓았다. 이후 동창생들이 지인을 소개해 주자 이들이 송금한 돈을 받아 다른 피해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돌려 막기’ 방식으로 자금을 운용했다.
대학 졸업 이후 무직 생활을 이어온 B씨는 저축은행중앙회가 표기된 가짜 명함과 출입증을 만들어 피해자들에게 보여주고, 정장을 차려 입고 출근하는 척하며 금융회사 직원 행세를 했다. 받아낸 돈은 생활비와 스포츠 도박 등에 탕진했다. 반면 20대 사회초년생이 대부분인 피해자들은 최고금리 수준의 대출을 받아 높은 이자를 부담하게 됐고, 신용등급이 하락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지난 6월 피해자들의 고소를 접수하고 수사에 돌입, B씨를 사기 및 사문서위조ㆍ행사 등 혐의로 구속해 기소의견으로 최근 검찰에 송치했다. 21일 경찰에 따르면 B씨는 2016년 1월부터 올 8월까지 140여명으로부터 총 68억원을 가로챘다. 경찰 관계자는 “고소장을 제출하지 않은 피해자가 더 있어 피해 금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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