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잘 나가는 역사 강사 설민석 씨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처분 소식이 있었다. 설민석은 3ㆍ1운동을 두고 “민족 대표들이 현장에 없었다”고 하고, 태화관을 일러 “우리나라 최초의 룸살롱”이라 표현했으며, 민족 대표들이 “낮술을 마신 뒤 자수하기 위해 택시 불러달라 행패를 부렸다”고도 했다. “손병희는 주옥경이라는 술집 마담과 사귀었다”고도, “민족 대표 대다수가 1920년대에 친일로 돌아섰다”고도 했다. 이에 반발한 3ㆍ1운동 관련 단체들과 유족 등이 소송을 냈다.
▦ 무혐의 결정 논리는 예상대로다. 흥미를 위한 과장에도 불구하고 사실관계는 어느 정도 맞고, 역사적 평가는 자유롭다는 점을 내세웠다. 개인적으로 이 사건이 흥미 있었던 포인트는 지난해 3월, 애초 문제가 된 방송 내용을 두고 여러 말이 오갈 때 내놓았던 설씨 측의 해명이었다. “의도와 다르게 유족분들께 상처가 될 만한 지나친 표현이 있었다는 꾸지람은 달게 받겠다”라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민족 대표 33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주장의 핵심은 물리지 않은 셈이다.
▦ 설씨의 주장은 ‘말초적 자극성’만 빼면 학계에선 이미 익숙한 이야기다. 3ㆍ1운동은 위대하나 순진했으며, 임시정부 또한 거창하나 분열적이었다는 얘기 말이다. 설씨의 죄라면 ‘MSG 과다 투입죄’쯤 될까. 여하튼 일반적 선입관과 달리 ‘2019년은 건국 100주년’이라는 현 정부의 드라이브를 불편하게 여기는 역사학자들도 상당수 있다. 지나친 신화화이기도 하지만, 사회주의자나 아나키스트 같은 좌익 계열 독립운동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분단 상황이니 그렇다 쳐도, 통일 이후까지 생각하면 좀 더 토론이 있어야 할 문제라 본다.
▦ 그렇다고 건국절을 주장하는 이들이 좌익 계열 독립운동까지 포용하진 않을 것 같다. 그러면 남은 선택지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역사를 진공 상태처럼 만들고, 서북청년단 같은 이들에게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의 공을 돌리는 방향뿐이다. 왕조시대는 그저 빨리 사라지는 게 나았으며, 독립운동이란 게 애는 썼는데 별 영양가는 없었다는 식의 논리다. 바로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을 내세우는 북한의 논리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때도 그러더니 겉으론 욕해도 속으론 북한이 그렇게나 부럽나 싶다.
조태성 문화부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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