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레 여름휴가는 광복절 즈음의 을지훈련이 끝난 다음에야 갈 때가 많았다. 올해는 소위 성수기에 남원, 청양, 보령에 다녀왔다.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우리는 에어컨이 나오는 공간을 벗어나지 못했다. 더워도 너무 더웠기 때문이다. 결심했다. 이젠 한여름에는 휴가 가지 않기로 말이다. 우리나라만 더운 게 아니었다. 온 북반구가 다 더웠다. 지구라는 행성이 너무 뜨거워졌다. 이젠 휴가를 다른 행성으로 가야 하는 건 아닐까?
우주여행의 가능성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우주여행 안내서만 봐도 그 흐름을 알 수 있다. 2008년에 나온 책의 제목은 ‘위험하면서도 안전한 우주여행 상식사전’이었다. 우주를 안전하게 여행하기 위한 지침서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서 우주여행을 꿈꾸기는 쉽지 않다. 우주여행은 위험한 일이라는 걸 기본적으로 깔고 있기 때문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이제는 10년이면 우주여행 가능성마저 바뀐다. 올해 나온 책의 제목은 ‘지금 놀러 갑니다, 다른 행성으로’다. 두 명의 과학자가 우주여행 코디네이터를 자처하고 나섰다. 우주여행을 위한 안전장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책은 지구의 달과 다른 행성의 ‘가볼 만한 곳’을 알려주기에 여념이 없다. 심지어 각 행성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액티비티 프로그램까지 소개한다. 요즘 우리가 보는 여행안내서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여행 코디네이터조차도 가보지 못했으니 책에 나오는 많은 것들이 가상인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주여행이 꿈같은 이야기만은 아니다. 누군가는 꿈만 꾸고 누군가는 그 꿈을 이룬다. 러시아 우주기술업체 에네르기아는 미국의 보잉사와 함께 10일짜리 단체 우주여행 상품을 내놨다. 러시아는 그 동안에도 우주정거장에 빈자리가 생기면 민간 우주관광객을 보냈다. 일곱 명이 다녀왔는데 1인당 376억 원이 들었다. 단체여행이다 보니 비용도 저렴하다. 1인당 비용이 약 180억 원. 우주여행과 영상촬영 포함가격이다. 단체라고 해봐야 6명뿐이다. 단체 우주관광객의 출발은 당장 내년이다.
미국의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의 앨런 머스크가 설립한 미국 항공우주장비 제조 및 우주 수송 회사인 스페이스 엑스의 최근 성과는 저가 우주여행의 실현을 기술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스페이스 엑스는 1단 추진 로켓을 발사에 재사용한 뒤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같은 회사의 팰컨 헤비는 2층 버스 다섯 대의 무게에 해당하는 무려 64톤의 화물을 싣고 우주정거장에 갈 수 있다.
우주여행지로는 어디가 좋을까? 달은 이미 사람이 다녀왔다. (내년이면 벌써 아폴로 11호 달 착륙 50주년이다.) 이왕이면 미지의 장소가 좋겠다. 행성 가운데 한 곳을 고르자. 수성과 금성은 너무 뜨겁다. 목성과 그 바깥쪽의 행성은 너무 멀기도 하거니와 기체형 행성이라 발을 디딜 수가 없다. 남은 곳은 화성이다. 화성의 하루는 1지구일과 비슷하다. 1년의 길이가 지구보다 39일 더 길뿐이다. 태양광 발전이 가능하고 토양에는 물이 있고 공기에는 질소가 풍부하다. 잘하면 사람이 살 만한 곳이라는 뜻이다.
우주여행 업체가 등장하는 까닭은 물론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비영리단체 마스원은 2024년부터 한 번에 네 명씩 총 스물네 명을 화성으로 보낸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편도 여행이다. 화성에 정착해서 살아야 하는 이주계획이다. 그런데 여기에 140개 국에서 20만 명 이상이 지원했다. 우주에 가려는 사람은 넘치고 기술은 실현 직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뭘 하고 있을까? 우리라고 손 놓고 있는 게 아니다. 10월 말 경에는 한국형 로켓을 발사한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자. 2009년 기사를 검색해 보시라. ‘기재부, 나로 2호 2019년 발사 무리’ ‘나로 2호, 2019년 발사 어렵다’ 같은 부정적인 기사 일색이다. 하지만 한국 과학자들은 한국형발사체(KSLV-II) 준비를 차곡차곡 해왔다. 지구 저궤도(고도 600~800km)에 1.5톤급 실용위성을 투입할 수 있는 300톤급 3단형 발사체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1단 로켓은 75톤 엔진 네 개를 묶어 만들고, 2단 로켓은 75톤 엔진 한 개, 그리로 3단 로켓은 7톤 엔진 하나로 구성된다. 다만 올해는 3단이 빠진 2단형 로켓이 발사된다. 10월 발사 성과에 따라 3단 로켓 발사일이 잡힐 것이다.
한국형발사체 사업에 돈이 엄청나게 들까?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2년 동안 예산이 채 2조 원이 안 된다. 겨우 2조! 결국 쓸모없는 것으로 밝혀지고 반대로 환경마저 파괴한 4대강 사업비 22조에 비하면 정말 적은 액수다.
한 번에 성공하기 바란다. 하지만 실패한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비난하지 말자. 과학과 기술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 우리도 언젠가는 유인우주선을 만들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주로 이주할 생각은 말자. 어떻게든 지구를 고쳐서 사용하자. 다른 행성으로는 놀러만 가자.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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