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 국내 첫 루지 체험시설
작년 2월 개장 연 180만명 이용
터널ㆍ360도 회전ㆍS자ㆍU자 등
30여개 다양한 코스로 구성
가족단위 익스트림 레저로 인기
홍천ㆍ강화군 등 벤치마킹 잇따라
경남 진주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강석호(33)씨는 한 달에 한 번 친구들과 함께 통영을 찾는다. 특별한 동력장치 없이 특수 제작된 카트를 타고 땅의 경사와 중력만을 이용해 트랙을 달리는 놀이시설 루지(Luge)를 타기 위해서다. 강씨는 “게임이나 가상현실에서 느껴보지 못하는 속도감과 스릴을 맛 볼 수 있어 매달 한 번은 꼭 찾는다”면서 “거기다가 친구들과 함께 경주를 하면서 타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다”고 말했다.
박현지(42ㆍ여)씨도 최근 8살과 11살인 두 아들 때문에 루지에 푹 빠져있다. 박씨는 “다른 레저에 비해 조작법이 쉬워 나이가 어린 두 아이도 재미있게 탄다”며 “요즘에는 층간 소음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아이들이 밖에서 잘 뛰어 놀지도 못하는데 이 곳에서 신나게 루지를 타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한려수도의 심장으로 알려진 경남 통영은 요즘 케이블카와 루지의 도시로 변모했다. 케이블카는 지난해 140만명이, 루지는 180만명의 관광객들이 찾았기 때문이다. 무더위가 한풀 꺾인 지난 19일 오전 8시 스카이라인 루지통영에는 그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많은 사람들이 매표소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기다린 탓에 짜증도 날 법하지만 관광객들의 표정에는 하나같이 설렘이 가득했다.
두 시간 전부터 줄을 서고 있었다는 김상경(41)씨는 “통영에 사는 지인이 아침부터 줄 서야 일찍, 그리고 많이 탈 수 있다고 팁을 줘서 애들을 데리고 오전 6시반에 숙소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이번이 통영에 네 번째 방문이라는 박수정(34ㆍ여)씨는 “저번에 오후에 왔다가 얼마 타지도 못하고 줄만 서다 간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는 아침 일찍 서둘렀다”고 밝혔다.
오전 9시. 매표소가 문을 열자 이용객들은 표를 끊고 자신에게 맞는 헬멧을 착용한 뒤 스카이라이드로 향했다. 스카이라이드는 5인승 체어리프트로, 이 리프트를 타면 루지를 타기위한 출발지점까지 갈 수 있다. 스카이라이드에 탑승하면 미륵산과 통영 시내를 비롯한 멀리 있는 한려해상국립공원도 한 눈에 볼 수 있고, 코스 등을 미리 파악할 수 있어 이용객들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리프트 탑승 후 출발지점에 도착하면 루지를 처음 타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줄로 나뉜다. 처음 타 보는 사람은 파란색 옷을 입은 안내원들의 지도에 따라 4~6명씩 안전교육을 받게 된다. 안전교육에는 주의사항을 비롯한 조작법 등을 설명해준다. 조종은 아주 간단하다. 카트에 다리를 앞으로 쭉 뻗고 앉아 핸들을 두 손으로 녹색방향으로 앞으로 밀면 썰매가 천천히 앞으로 나간다. 조금 더 힘을 줘 앞으로 더 밀면 속도가 붙는다. 반대로 핸들을 붉은색 방향인 몸 쪽으로 잡아당겨주면 속도가 늦춰진다.
코스의 길이는 총 2.1㎞로 ‘단디’와 ‘헤라’ 2개의 코스로 운영된다. ‘(안전에) 주의하라’는 의미의 경상도 사투리 ‘단디 해라(단단히 하라)’를 차용한 단어다.
각 코스에는 터널, 360도 회전코스, S자, U자 등 30여개의 다양한 코너로 구성돼 있다. 특히 헤라 코스는 롤러코스터처럼 중간에 경사가 뚝 떨어지는 구간도 있어 이용객들에게 더 인기가 있다. 코스 곳곳에 안전요원이 대기하고 있고, 양 옆으로 턱이 있어 트랙을 벗어나거나 안전사고의 염려는 없다.
각 코스에는 이용객들의 함성소리로 가득했다. 박진만(47)씨는 “경사를 내려오는 속도와 함께 맞는 바람이 너무 시원하고 상쾌하다”면서 “무더위와 스트레스가 한방에 해소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휴가차 왔다는 이혜린(27ㆍ여)씨도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지 직접 타보니까 알겠다”며 “벌써 세 번째 주행”이라며 웃었다.
8분에서 10분이면 종착점에 도착할 수 있고, 익숙해지면 긴장해서 보지 못했던 경관들도 눈에 들어와 한 번만 타고 가는 사람은 드물다.
이러한 매력 덕분에 지난해 2월 개장한 통영 루지는 한 해 동안 탑승객 약 180만명이 이용하는 인기를 누렸다. 애초 운영 주체인 뉴질랜드의 스카이라인 엔터프라이즈는 75만명을 예상했지만 배가 넘는 성과를 얻은 것이다.
스카이라인사는 360도 하강 활주 트랙과 2.1㎞길이의 긴 트랙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코너가 통영 루지의 성공 비결이라고 보고 있다.
스카이라인 관계자는 “단순한 좌우 반복의 곡선구간이 아니라 짧은 코너에서 긴 코너, 회전구간 등 겹치는 구간이 없어 탑승자가 지겨울 틈이 없다”면서 “특히 조작법은 썰매만큼 간단해 키 110㎝ 이상이면 누구나 쉽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데다 뛰어난 접근성 등도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경우 문화수준과 레저수준은 올라갔는데 그에 맞는 익스트림 콘텐츠는 한정적”이라면서 “루지의 경우 다른 레포츠와 다르게 특별한 장비와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아서 싱가포르 센토사섬에 있는 체험장에도 연간 200만명의 관광객들이 이용할 정도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1985년에 설립된 스카이라인은 뉴질랜드를 대표 레포츠 엔터테인먼트사로, 현재 뉴질랜드에 2개소, 캐나다 2개소, 싱가포르 1개소, 통영 1개소 등 총 6개소의 루지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다.
스카이라인사는 통영의 성공에 힘입어 부산에 220억원을 들여 7번째 루지 개장을 2021년 하반기쯤 추진 중에 있다. 지난 4월에는 경기도와 루지 레포츠 시설 투자의향서를 체결했으며, 본사 관계자들이 내려와 3개 정도의 부지를 선정ㆍ조사 중에 있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을 시작했다. 강원 홍천군 대명 비발디파크 루지월드는 지난해 7월부터 트랙길이 833m로 운영 중에 있으며, 올해 6월 28일 인천 강화군 씨사이드리조트와 지난달 1일 양산 에덴벨리에서 각각 문을 열었다.
특히 ‘영남의 알프스’로 불리는 양산 신불산 자락에 위치한 에덴밸리에 들어선 루지 체험장은 2.4㎞의 세계 최장 길이의 트랙으로 개장 첫 달부터 하루 평균 3,000명의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통영에 이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에덴벨리 관계자는 “리조트 자체가 외진 곳에 있어 별 기대 없이 추진했는데 지난해 여름 점유율 20~30% 불과하던 객실이 올 여름에는 빈방이 없을 정도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면서 “루지는 사계절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최근 다른 리조트에서도 우리를 벤치마킹해 루지를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통영ㆍ양산=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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