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설레서 (잠을) 잘 못 잤지요.”
20일 시작하는 이산가족 상봉 1차 행사를 위해 전날 강원 속초시 한화리조트에서 하룻밤을 묵은 남쪽 이산가족들은 북녘의 가족을 만날 생각에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북쪽의 조카들을 만나러 가는 이병주(90)씨는 ‘잠은 잘 주무셨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마음도 설레고, 늙어서 일찍 깨기도 하지만”이라고 답했다.
동생 이씨와 행사에 동행한 관주(93)씨는 “이번에 만나면 내가 죽을 때까지 못 보는 기야”라며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이번에 (내가) 우리 아들을 데리고 같이 가는데 이유가 있어요. 나랑 내 동생이 저 세상으로 가도 남쪽 내 자식하고 그쪽(북쪽) 조카들하고 서로 사촌 지간이니 맺어줘야 해요.” 이씨 형제는 조카들을 위해 옷과 시계 등 선물을 일곱 보따리나 준비했다고 한다.
조카들을 만날 예정인 이시득(96)씨도 금강산행 버스의 출발 예정 시간보다 3시간이나 앞선 오전 5시에 기상했다. 그는 “아직은 기분이 어떤지 실감이 안 난다. 우리 집에 며칠 전부터 미국, 영국, 우리나라 카메라들이 잔뜩 오고 (내가) 뉴스에 나오고 그랬다. 그래서 더 얼떨떨하다”고 했다. 동이 트기도 전인 오전 3시에 일어났다는 신종호(70)씨는 이복 여동생들을 만날 예정이라면서 “몸은 어디 아픈 데 없이 좋다. 거기 가서도 좋아야지”라고 말했다.

시력이 좋지 않아 딸의 도움을 받아 금강산행 버스에 오른 이금연(87)씨는 곱게 개량한복을 차려 입고 있었다. 북측 올케를 만난다는 설렘이 그의 정갈한 차림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대한적십자사 자원봉사자들은 “간밤에 건강 이상을 일으키거나 몸이 좋지 않다고 알려온 상봉자는 없었다”고 전했다.
이산가족들은 오전 8시 35분 27대의 버스를 나눠 타고 속초를 출발, 금강산으로 떠났다. 이산가족을 환송하기 위해 전날 저녁부터 속초에 머물렀던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마음이 다들 급하신 것 같다. 워낙 급하신 마음에, 어서 출발하시고 싶은 마음에 버스도 빨리 타고 싶으실 것”이라며 “건강히 다녀오시라는 마음뿐”이라고 전했다. 1차 행사는 이날 오후 3시 단체상봉으로 시작한다. 남북 이산가족은 1~3일차에 각각 4시간, 5시간, 2시간씩을 보내게 된다.
속초=공동취재단ㆍ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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