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4일은 국제사면위원회(Amnasty International) 인도 지부가 미나크시 쿠마리(Meenakshi Kumariㆍ당시 23세)와 여동생(당시 15세)의 인권과 안전을 보장할 것을 인도 정부와 법원에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한 날이다. 결과적으로 그 서명운동이 인도 헌법과 경찰ㆍ법원을 포함한 국가권력보다 강력했다. 적어도 인도 카스트(Caste)의 최하층 달리트(Dalit) 계급의 쿠마리 자매에게는 그랬다.
석 달 전인 2015년 5월,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바팟(Baghpat) 마을의 비공식 지도자회의 ‘캅 판차야트(Khap Panchayats)’는 쿠마리 자매를 집단 강간한 뒤 나체로 행진하도록 하는 처벌을 결정했다. 자매의 25세 오빠(Ravi Kumar)가 상위 계급 ‘자트(Jat)’의 기혼여성과 눈이 맞아 도망친 데 대한 ‘응징’이었다. 자트는 카스트 상의 중간 계급에 해당하지만, 그 마을에서는 최다ㆍ최상위층이었고, 지역 정치공동체 ‘캅’의 의사결정기구 격인 ‘판차야트’의 구성원도 모두 자트 계급 남성이었다. 그 회의는 공식 행정기구인 ‘그람 판차야트’와 달리 법적 권한이 없는 임의조직이지만, 지역 경제를 장악한 채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자매는 회의 직전 수도 델리로 도피, 극적으로 화를 면했다.
캅 판차야트의 수족이나 다름없던 지역 경찰은 자매의 행방을 대라며 친척들을 연행해 고문했고, 오빠 라비와 함께 도주한 여성의 친척들도 전화 등을 통해 쿠마리 가족의 살해 협박을 일삼았다.
도피 생활을 하던 미나크시 쿠마리는 146쪽에 달하는 탄원서를 인도 대법원에 제출했고, 가족들도 인도 인권위원회와 지정카스트위원회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인도 카스트제도는 1947년 제헌헌법으로 철폐됐지만, 직업 혈통 출신지역 등에 따른 4계급과 3,000여개 하위 카스트는 성씨와 거주지 등을 통해 여전히 온존하고 있고, ‘캅 판차야트’역시 2011년 인도 대법원이 불법으로 판결했지만, 법 바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앰네스티의 서명운동에 보름여 사이 50여만명의 세계인이 동참했고, 세계 언론이 잇달아 저 사정을 보도했다. 인도 대법원은 9월 15일, 델리 경찰의 책임하에 자매의 귀향과 신변 안전을 보장할 것을 판결했다. 앰네스티는 쿠마리 가족의 뜻을 좇아 제3의 장소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했고, 응분의 배상도 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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