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건스탠리 “비중 축소” 의견내자
SK하이닉스, 이달 13.4% 하락
셀트리온 등 바이오주도 직격탄
외국계 IB 보고서 ‘희소성’ 탓
영향력 크고 ‘쏠림’ 자주 발생
일각선 “맹신보다 참고사항”

코스피 시장 시가총액 2위인 SK하이닉스는 이달 들어 주가가 13.4% 하락하며 시총 8조4,000억원가량을 허공에 날렸다. 지난 5일 유력 외국계 증권사인 모건스탠리가 반도체 공급 증가에 따른 가격 하락 전망을 들어 SK하이닉스에 대한 투자 의견을 기존 ‘비중 확대’(5개 등급 중 2번째)에서 ‘비중 축소’(4번째)로 두 단계나 낮춘 영향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보고서 공개 직후인 6일 이 회사 주식 1,446억원어치를 내다 파는 등 20일까지 5,822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SK하이닉스 주식을 2조2,695억원어치 순매수했던 외국인 투자심리가 보고서 하나에 급반전한 것이다.
국내 증시가 외국계 투자은행(IB)의 분석 보고서에 몸살을 앓고 있다.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대형 IB들이 국내 주요 상장사들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통해 외국인 투자에 영향을 미치면서 해당 회사는 물론이고 반도체, 바이오 등 대표 업종의 전반적 주가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외국계 IB들이 올해 들어 매도 의견을 낸 국내 상장사들은 SK하이닉스, 셀트리온, 한미약품, 호텔신라, 파라다이스 등이다.
모건스탠리는 SK하이닉스에 대한 비중 축소 의견을 제시한지 4일 만인 지난 9일 “반도체 경기가 과열 양상을 보인다”며 반도체 업종 전반에 대한 투자의견을 가장 보수적인 수준인 ‘주의’로 낮췄다. 그러자 삼성전자에도 외국인 순매도 공세가 번지면서 5일간 주가가 6% 하락했다.
바이오 업종도 직격탄을 맞았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2일 바이오 대표주인 셀트리온의 목표가를 직전 거래일(10일) 주가 27만2,000원보다 46%나 낮은 14만7,000원으로 제시했다. 셀트리온은 이튿날인 13일부터 3거래일 동안 284억원 규모의 외국인 순매도 물량에 치여 주가가 5% 하락했다. 여파는 업종 전반에 미치면서 13일 셀트리온이 포함된 코스피 200 헬스케어 지수는 3.81%, 코스닥 상장 주요 바이오업체가 포진한 코스닥 150 생명기술 지수는 4.86% 급락했다.
우리나라 증시에서 외국계 IB 매도 보고서의 파급력이 큰 이유는 ‘희소성’ 때문이다. 국내 증권사들은 코스피ㆍ코스닥 상장사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꾸준히 제시하지만, 글로벌 증권사들은 전세계 금융시장을 망라하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 증시, 그것도 개별 상장사를 분석 대상으로 삼는 횟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글로벌 IB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가 크다 보니 보고서가 나올 때마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특히 전체 증시 자금에서 외국인 투자금이 코스피의 36.25%, 코스닥의 11.35%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큰 우리나라는 외국계 IB의 견해에 따라 투자 방향에 ‘쏠림’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국내 증권사 32곳이 올해 상반기 작성한 기업분석보고서 8,347건 중 매도 의견은 단 5건에 불과한 상황이다 보니, 기업에 대한 투자 의견을 보다 자유롭게 밝히는 것으로 알려진 외국계 IB의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증권사 보고서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매도 의견을 제시하는 외국계 IB의 보고서는 특히 주목 받게 되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계 IB이 냈다는 이유만으로 보고서를 맹신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예컨대 올해 1월 노무라증권과 도이치증권이 셀트리온에 대한 매도 보고서를 작성하고, 지난해 7월에는 크레디리요네(CLSA) 증권이 삼성SDS에 대한 목표주가를 낮췄지만 이후 이들 회사의 실적이나 주가 흐름은 양호한 모습을 보였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증권사 보고서가 매수 일색인 상황에서 외국계 IB가 가끔 공개하는 매도 보고서는 희소성이 있다고 느끼게 된다”며 “그러나 증권사 보고서는 기본적으로 해당 종목에 대한 주관적 판단과 의견이 개입하는 만큼, 투자자라면 지나치게 신뢰하기보다 참고용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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