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절한 초대” 논란 불구 참석
신부 크나이슬 장관과 춤도 춰
야당 “EU 외교정책 훼손” 비판
18일 오후(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남부의 작은 마을 감리츠. 이 곳에서 열린 카린 크나이슬(53) 오스트리아 외무장관과 사업가인 볼프강 마일링어(54)의 결혼식은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를 비롯, 이 나라 정치권 거물 100여명이 모인 ‘별들의 잔치’였다. 그러나 가장 시선을 사로잡은 인물은 신부 크나이슬 장관도, 쿠르츠 총리도 아니었다. 바로 며칠 전 “크나이슬 장관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할 것”이라는 ‘깜짝 발표’로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와 BBC방송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전용기를 타고 오스트리아 제2도시 그라츠에 내린 뒤 자동차 편으로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지각 대장’이라는 별명답게 애초 예식 시작 시간보다 10분쯤 늦게 도착한 그는 오스트리아 전통 의상을 입은 신부 크나이슬 장관에게 노란 꽃다발을 건네고는 함께 춤을 추며 축하의 뜻을 표했다. 러시아 전통 코사크 합창단의 공연도 결혼식의 흥을 돋우어 줬다. 한 시간쯤 예식장에 머무른 그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위해 독일 베를린으로 떠났다.
푸틴 대통령의 이번 오스트리아행이 논란이 된 까닭은 최근 러시아와 유럽연합(EU)의 불편한 관계 때문이다. EU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으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사태, 영국에서 발생한 전직 러시아 이중 스파이 독살 시도 사건 등과 관련,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게다가 오스트리아는 현재 EU 순회 의장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 년간 ‘중립 노선’을 지켜 온 오스트리아의 외교 수장이 결혼식에 푸틴 대통령을 초대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BBC는 “야권에선 ‘크나이슬 장관이 하객 선택으로 EU의 외교 정책에 흠집을 내고 있다’고 비난한다”고 전했다.
특히 쿠르츠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국민당과 극우 자유당이 꾸린 연립정부가 러시아 쪽으로 ‘쏠림’ 현상을 보이는 데 대한 우려도 크다. 실제로 자유당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반대하는 등 친러 행보를 보여 왔고, 학자 출신인 크나이슬 장관도 자유당의 천거로 외무장관이 됐다. 중도좌파 사회민주당 소속 안드레아스 샤이더 의원은 “외무장관이 명백히 한쪽(러시아)에 섰을 때, ‘정직한 중재자’가 되겠다는 EU 의장국 지위가 어떤 의미를 지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물론 오스트리아 외무부와 러시아 측은 “사적인 방문”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크나이슬 장관은 푸틴 대통령과 특별히 가까운 관계는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은 지난 6월 오스트리아 방문 때 결혼식 초청을 받았고, 이날 결혼식의 신랑인 마일링어와 유도에 대한 열정을 공유했다”고 설명했다. WP는 “푸틴과 함께 한 ‘개인적 행사’가 오스트리아 내의 강한 반발로 공적인 의미를 갖게 됐다”고 지적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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