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해외 석학 칼럼] 트럼프주의와 대학의 갈등

입력
2018.08.19 16:33
0 0

버지니아 대학의 대외협력 기관인 밀러 센터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였던 마크 쇼트 전 백악관 입법국장을 임기 1년의 선임 직원으로 임명했다가 호된 항의에 직면했다. 두 명의 교직원이 센터를 그만 뒀고 임명 결정을 번복하라는 청원에 4,000명이 서명했다. 지난해 하버드 정치학연구소도 코레이 르완도스키 전 트럼프 선거캠프 본부장을 연구원으로 임명했다가 비슷한 항의를 경험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학들과 심각한 딜레마로 대치하고 있다. 대학은 주류 여론과 상충되거나 특정 집단에 위협적인 다양한 관점에도 개방적이어야 한다. 심지어 트럼프의 견해를 공유하는 학생과 교수이라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은 자유로운 연구와 토론의 장이어야 하고, 단과대학이나 대외협력 기관은 모름지기 학생들과 교수진에게 동시대의 정책입안자들과 교류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혐오스러운 대통령이라고 묘사할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인가를 정상화 또는 정당화해야 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가 기대고 있는 원칙을 매일 같이 위반하고 언론의 자유와 사법의 독립을 저해하는가 하면 인종차별 및 종파주의를 옹호하며 편견을 조장한다. 그는 거짓말도 천연덕스럽게 해댄다.

트럼프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오염된다. 트럼프의 측근과 정무직 인사라면 개인적 장점이 무엇이든, 트럼프의 발언과 단절하려 어떤 노력을 했든 그의 조력자일 수밖에 없다. 밀러 센터의 윌리엄 앤톨리스 본부장이 쇼트 전 국장의 임명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한 ‘지능’ ‘효율성’ ‘통합성’ ‘친화성’ 등의 자질도 반자유적 정치 의제를 위해 나서는 인사 추천에는 무용지물이다.

오물은 정치적 조력자를 넘어 경제 정책 입안자들에게까지 튄다. 트럼프의 내각과 고위급 인사들은 부끄러운 대통령직을 지지한 데 대한 공동 책임이 있다. 무역적자나 대중 무역관계에 대한 삐딱한 시각도 문제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복무 기간이 길어질수록 트럼프의 행동에 완전히 동화되기 때문에 비난 받아 마땅하다.

따라서 학문기관은 좁은 길을 가야 한다. 트럼프와 측근에게 등을 돌릴 수도 없고, 그들의 견해를 무시할 수도 없다. 그렇지 않으면 숨막히는 상황이 되겠지만 대학이 지향하는 바와 상충되는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 트럼프 캠프에 ‘리버럴 엘리트’를 악마화할 기회를 제공하는 역효과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분명한 교전 규칙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경청과 존경의 구별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및 고위 인사들은 토론과 논의 대상으로 환영해야 한다. 그들이 등장할 때 깍듯하게 예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고위 정부 관료들이 통상적으로 누리는 존경이나 존중을 표시해서는 안 된다. 결과적으로 영예와 존중으로 대접해야 할 정상적인 정부가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연구원이나 선임 직원 따위의 명예로운 직함은 어림도 없고, 명사강의는 물론 회의나 행사 직전 기조연설 또한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개별 교수단과 학생단체가 자유롭게 트럼프 행정부의 정무직 인사를 초청해 캠퍼스에서 강연하는 것은 자유다. 당연히 그런 초청에는 대학 고위 간부의 허락이 필요 없다. 그리고 강의와 발표는 항상 활발한 질문과 토론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쌍방향 상호작용이 없으면 학습이나 이해는 없고 설교만 있을 뿐이다. 단지 성명을 발표하고 심문을 회피하겠다는 행정부 관리들은 환영 받지 못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감하는 학생과 교수들은 이런 관행이 차별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규칙을 지지함으로써 언론의 자유와 관점의 교환을 장려하는 것과 대학 자체의 가치를 명확하게 하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이 없다.

다른 조직이나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대학도 자신의 가치에 따라 스스로의 관행을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다. 물론 대립되는 가치가 있거나 또는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적 측면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대학 내 하위 그룹이 그런 관행을 바라볼 때는 달리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부 학생들은 특정 학습 과정의 요건이 너무 엄격하거나 시험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다. 대학은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자유로운 토론을 허용한다. 그러나 동시에 요건이나 시험의 강도에 대한 규칙을 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학은 교육 철학과 교육학적 가치에 대한 중요한 신호를 사회 다른 분야에 보낼 수 있다. 트럼프주의에 대한 존대를 거부하는 것과 트럼프주의에 대한 완전한 논의를 허용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대학은 자유로운 연구와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 둘 다 지지해야 한다. 전자는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은 채로 트럼프의 견해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을 의미한다. 후자는 그런 개입을 할 때 섬세한 계량을 수반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자유민주주의 규범을 심대하게 위반하는 정부에 복무하는 사람에게는 한 치의 명예나 인정도 고려할 필요가 없다.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공공정책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