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 법인가를 선언할 수 있는 권한은 사법부의 영역이자 본분이다.” 미국 연방대법원 청사입구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개인이나 집단의 행위가 위법한지를 따지는 것과 더불어 법 자체의 의미를 적절히 해석하는 것도 법관의 일이라는 뜻이다. 이 문장은 1803년 당시 대법원장이었던 존 마셜이 일명 ‘마버리 재판’의 판결문에 쓴 말이다.
사연은 이렇다. 존 애덤스 대통령은 임기 종료 직전 치안판사 42명을 임명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중 4명에게 임명장이 전달되지 못했다. 차기 대통령으로 취임한 토머스 제퍼슨은 치안판사 수를 30명으로 줄이면서 5명을 새로 임명했다. 재임명되지 못한 판사 17인 중 한 명이었던 윌리엄 마버리는 치안판사로 임명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대법원에 직무집행명령 소송을 제기했다. 보통 소송은 하급법원부터 단계를 밟지만 마버리는 신속한 판결을 기대하며 연방대법원에 소송을 냈다. 결과적으로 연방대법원은 대법원이 이 사건을 제1심으로 심리해 영장을 발부하는 것이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법원의 사법심사권을 행사한 최초의 판결로 현대국가에 존재하는 위헌법률심판은 여기서 유래했다.
어떤 재판은 단지 유죄냐 무죄냐의 판결로 끝나지 않고 이처럼 전세계 헌정사에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 온다. 전향적인 판결은 시민의 인식이 변하기 전에 사회정책을 바꾸기도 한다. ‘재판으로 본 세계사’는 이런 재판을 모은 책이다. 30년 간 판사로 재직한 박형남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실무자의 눈으로 역사 속 재판을 들여다 봤다. 소크라테스, 갈릴레이, 찰스 1세, 나치의 홀로코스트 등 이미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재판을 중심으로 살펴본다는 점도 흥미롭다.
재판으로 본 세계사
박형남 지음
휴머니스트 발행ㆍ408쪽ㆍ2만원
사법부의 권한으로 사회의 더 나은 발전을 적극적으로 이끈 사례에 눈이 간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흑인 학생과 백인 학생을 분리 교육하는 공립학교의 정책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1954년 판결했다. 판결 직후 백인들은 사법부가 과도한 평등을 주장한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일부 법조인들은 권력분립을 벗어난 잘못된 사법적극주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판결 이후 시민불복종 운동이 미국 전역으로 번졌다. 어떤 형식의 차별도 금지한다는 내용의 민권법은 이에 힘입어 1964년 의회를 통과했다.
사법부 권한 행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제는 하나다. “시민의 권한이 사법부나 입법부의 권한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과 법령을 통한 입법부의 의지가 시민의 의지에 반하는 것일 경우, 헌법에 명시된 대로 법관은 입법부보다는 시민의 의지에 따라야 한다”(알렉산더 해밀턴)는 것.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가 상고법원 설치라는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재판을 거래 대상으로 삼고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터이니, 한국 사법부에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닐까. 법원을 견제할 수 있는 건 결국 시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시대 정신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은 결론을 낸 데에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ㆍ사법 참여가 밑거름이 되었다. 처음부터 완벽한 제도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법의 정신을 구현하고 운영하는 바탕은 국민들의 굳은 의지이며 지도자들의 겸허한 지혜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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