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선택을 도덕적으로 매우 경멸하는 사회규범이 강한 사회이다. 이제는 앞에서 대놓고 뭐라 할 정도 사회적 분위기는 아니라고도 하지만, 돌아서서 수군대고 손가락질하는 문화는 여전하다. 여성 혼자서 혹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하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본 경험이 있는가? 법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비혼 직장여성이 임신을 하면 조용히 직장을 떠나든가 아니면 낙태를 하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다 보니 혼인 건수가 줄어들면 출생아 수도 당연히 줄어드는 현상을 보인다. 1999년 혼인 건수가 29만6,000건이었다. 그다음 2000년에는 63만4,000여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2016년 혼인 건수가 22만1,000건으로 줄어들었는데, 같은 해 태어난 아이 수는 40만6,000여 명이다. 2017년에는 35만7,000여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혼인신고가 출산의 필수 전제조건인 사회에서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이다. 혼인 건수가 줄어드는 반면, 혼자 사는 젊은 여성 수는 증가하고 있다. 2000년 당시 약 4만5,000명이었던 40대 미혼여성 가구주 수가 2018년에는 23만6,000명으로 증가하였다. 20년이 채 안 된 사이 다섯 배 이상의 증가율이다. 통계청 표현으로 미혼이지만, 이 여성 중 다수는 비혼의 삶을 선택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출산 가능성이 거의 없는 연령으로 진입한 이 여성들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출산 의도나 출산 기회를 가진 적이 없었을까? 상당수는 있었겠지만 비혼출산으로 인한 차별 때문에 포기했을 것이다. 30대 미혼여성 가구주도 같은 시기에 12만3,000명에서 42만명으로 세 배 이상 증가하였다. 이 중 상당수는 비혼을 선택할 것이고 이는 필연적으로 출산 포기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이른바 ‘혼외 출산’ 비율이 2% 내외인 국가는 일본과 한국뿐이다. 100명의 출생아 중 2명이 혼인신고 없이 태어난다. 관련 비율의 회원국 평균은 40% 내외이다. 회원국 중 상대적으로 낮은 혼외 출산율을 보이는 국가가 독일이다. 1995년 당시 독일은 혼외 출산율이 16.1%였고 출산율은 1.25였다. 2014년 현재 혼외 출생아 비율이 35%가 되었고 출산율은 1.5로 올라갔다. 스웨덴, 노르웨이, 프랑스 등 2.0 내외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의 평균 혼외 출산율은 55% 내외이다. 서유럽 국가의 길거리에서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는 남녀를 보면 둘 중 하나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들 국가 사람들이 한국사람들에 비해 도덕적으로 문란하다고 볼 수 있는가? 혼인을 전제로 하는 출산만 용인하는 사회이다 보니 낳고 싶은 아이도 낙태를 하도록 강요하는 사회의 도덕적 수준은 얼마나 높은 것일까?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출산을 선택한 경우, 특히 비혼모에 대해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의 윤리 수준은 어떠한가?
둘이 만나서 좋아하고 사랑하면 함께 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아이도 태어나는 과정이 인생의 본질이다. 그 과정에서 혼인신고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당장 중요하지 않다. 법적 혼인신고와 관계없이 아이를 낳은 사람들이 어떤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고 ‘가족’을 이루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가 아이 울음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는 사회에서는 작동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신혼부부 대상 임대주택 지원을 받으려면 일정 기간 안에는 반드시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 혼인신고를 먼저 해야만 지원을 받던 현실에서 이것도 그나마 진일보한 변화이다. 그러나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출산을 했거나 출산 예정인 경우에 지원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한정된 자원을 갖고서 지원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면, 무자녀 혼인신고 부부가 우선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유자녀 동거부부가 우선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싶다면 이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할 때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