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전 세종대에 확인된 양국 격차의 생성ㆍ확대 배경의 하나로 차별적인 신분제도를 검토한다. 당시는 지금 이상으로 사람이 소중한 시대인데 양천ㆍ사농공상ㆍ적서 등의 차별로 인재의 국정 참여 등 제반 활동이 제한되어 국가 차원의 손실이 컸다. 장인과 상인이 천대받아 상공업 발달과 도시 형성이 늦어지고 의무가 제한된 노비가 많아 군역 자원과 납세자도 적었다.

우리 실격의 역사 중 가장 치욕적 장면인 임진ㆍ정유전쟁(1592-98년)때 신분제의 문제점이 부각되자, 재상 유성룡이 종군하여 공을 세운 노비를 면천하고 벼슬도 주자는 면천법을 제안한다. 덕분에 정규군 모집이 수월해지고 의병이 활성화된다. 하지만 전후 과거로 돌아가고 그가 교훈서로 남긴 징비록(1633년)과 강항의 간양록(1656년)에도 차별 해소를 위한 근본적인 해법이 없다.

차별의 정도는 조선보다 일본이 훨씬 작다. 농ㆍ공ㆍ상간에는 거의 없고 양인 대비 천인 비율이 월등히 작으며 적서 차별도 약하다. 조선 유교는 농업을 경제 기반으로 여겨 장인과 상인보다 농민을 중시하고 우대한다. 양천과 적서 차별을 좀더 살펴보자.

조선은 개국 후 4백년 이상 노비제를 운영하다 19세기에 공노비와 궁노비를 해방하고 세습제를 폐지한다. 사노비가 폐지되는 1894년까지 장기간 백성의 30% 전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민 업무를 맡은 말단 관원인 서리(胥吏)에 대거 세습 공노비가 보임된다. 조선은 법제상 자유와 권리의 제약이 큰 노비가 일선에서 공권력을 행사하고 제약이 작은 양반 관료 다수는 그 뒤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백성의 눈높이와 동떨어진 나라였다.

노비 증가의 배경엔 1432년 세종에 의한 고려 이래의 천자수모법(賤者隨母法) 재시행과 단속강화가 있다. 태종이 노비를 줄이려고 정한 1414년 종부법이 조기에 폐지되면서 노비들은 목숨을 담보로 내놓고 공을 세워야 양인이 될 수 있었다. 함경도 경원 일대 방어와 관련한 병조판서 이이의 1583년 4월 1일자 소가 한 예다. “서얼과 공천, 사천 중에서 무재있는 자를 모집하여… 방수하게 하되… 병조에서 재주를 시험한 뒤 보내게 하소서. 서얼은 벼슬길을 허통하고 노비는 면천하여 양인이 되게 하며…” 노비의 양인화를 뜻하는 면천, 종량, 속량, 속신, 납속 등의 말에 배여 있을 선조들의 피눈물과 애환에서 이 시대 역사의 품격을 어림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적서 차별의 서얼차대제는 고려에도 있었는데, 태종이 1415년 서얼금고법으로 법제화하고 세종이 시행을 강화한다. 배경에는 세자였던 동생 이방석과 정적 정도전에 대한 태종의 적개심이 있다. 축첩이 허용되던 시대로 양반가에선 정실보다 첩과 노비 소생이 훨씬 많다. 18세기 후반 정조, 대원군대에 약화되고 1894년 갑오개혁으로 폐지되는데 그때까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서얼은 과거를 보지 못하거나 급제해도 승진에 한계가 있었다.

일본의 신분제는 지배층인 공가ㆍ무사와 양인층인 농ㆍ공ㆍ상의 구분이 핵심이며, 천인인 에타ㆍ히닌 등은 전 인구의 2% 이하로 조선 노비보다 자유로웠다. 적서 차별이 법제화되지 않고 약한 배경에는, 메이지 유신 후 이에(家)제도로 확립되는 가부장제 관행으로 양자가 가독을 잇는 사례가 많았다는 사실이 있다. 이 제도는 1947년 5월의 신 헌법 시행으로 폐지된다. 역대 장군 중 서출은 무로마치 막부가 15명 중 73%인 11명, 에도 막부가 15명 중 80%인 12명이다. 반면 후궁의 아들인 조선의 왕은 27명 중 15%인 4명에 불과하다.

양인은 직분에 따라 농ㆍ공ㆍ상으로 구분되지만 서열 관계에 있지 않고 인구내 비율이 단연 높다. 무사내 서열은 막부가 장군ㆍ노중ㆍ기본ㆍ어가인, 번은 대명ㆍ가로ㆍ상-중-하 급 무사, 졸의 순이다. 공가ㆍ무사는 메이지 시대에 소수가 화족, 다수가 사족으로 바뀌는데, 1915년 1월 신분등기부가 폐지되고 전후의 신 헌법과 1948년 1월 신 민법 시행으로 제도가 폐지된다.

정리하면 중앙집권의 조선에선 신분 차별이 심해 인재가 사장되고, 양반이 권력과 부를 장악하고 관원의 부조리 만연으로 지방이 피폐해진다. 납세자수 감소 등에 따른 재정 악화로 도시와 가로, 시장, 수로 등 기반 시설 정비도 늦어진다. 배경엔 태종과 세종대에 강화된 차별적 신분제 등이 있다. 막부ㆍ번 분권의 일본에선 차별이 약하고 계층간 이동이 신축적이며, 권위와 권력은 공가ㆍ무사, 부는 호농ㆍ호상의 조닌층으로 분산된다. 관원이 무사여서 부조리가 적고 지방이 활성화되어 재정사정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며 각종 기반 시설이 조기에 정비된다. 배경엔 권력을 쥔 대명ㆍ무사 대상 규범인 무가제법도ㆍ어법도(御法度)와 분권의 긍정적 영향 등이 있다.

끝으로 주변에선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아들딸에게 ‘비정규직’이라는 현대판 신분 차별제로 올가미를 씌워 일그러진 삶을 강요하는 일이 20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실격의 현대사 장면이 아니고 무엇이랴.

배준호 한신대 명예교수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