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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최소한의 회피ㆍ저항 안 해… 자유의사 억압 증거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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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최소한의 회피ㆍ저항 안 해… 자유의사 억압 증거 부족”

입력
2018.08.15 04: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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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물 텔레그램 대화 삭제

지속적 安 지지ㆍ존중 발언

“피해자 진술 신빙성 떨어져”

安측 ‘합의 관계’ 주장 인정

檢 “피해 일관 진술” 항소키로

14일 오전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열린 안희정 전 충남지사 1심 무죄 선고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오전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열린 안희정 전 충남지사 1심 무죄 선고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은 14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피해자 진술이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밖에 없는 여타 성범죄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 역시 피해자 김지은씨 증언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피고인(안 전 지사)를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사회적, 도덕적 비난과는 별개로 철저히 현행법상 처벌이 가능한지 여부를 따져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쟁점은 ‘업무상 위력’의 성립 여부였다. 물리적인 강압이 없었더라도 가해자의 정치ㆍ사회ㆍ경제적 지위가 성적 관계를 거부할 수 있는 피해자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했는지 증명하는 게 관건이 됐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피고인이 유력 정치인이고 차기 대권주자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이었던 피해자의 임면 등 권한을 갖고 있었다 해도, 이를 이용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억압했다고 볼만한 증거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어 “여성이 자유의사에 따라 상대방 남성과 성관계를 맺은 결정을 사후적으로 번복하면서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스스로 부인하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업무상 위력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안 전 지사 측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재판부는 무엇보다 김씨 진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최초 범죄 행위가 있었던 2017년 7월 30일 러시아 출장 당시 호텔에서 발생한 관계를 언급하면서 “간음에 이르기 전 텔레그램 대화 내용이 대부분 삭제됐는데 이와 관련해 (김씨에게) 의심스러운 정황이 보인다”고 했다. 전임 수행비서인 신모씨에게 피해사실을 호소했다고 하는데 둘 사이에 이뤄진 대화 내용 역시 김씨와 신씨 사이의 진술에 차이가 있다는 점도 김씨 진술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다. ‘사건 전후 단계에서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피고인을 지지하고 존중하는 대화를 주고받은 행동도 김씨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재판부는 미투가 한창이었던 올 2월 서울 마포의 한 오피스텔에서 있었던 범행을 두고도 “당시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서울로 올라왔고, 둘이 주고받은 텔레그램 대화가 모두 삭제된 것을 볼 때 피해자 진술에 의문이 간다”고 했다. 미투 운동이 한창인 상황에서 증거물이 될 수 있는 텔레그램을 삭제했고, 스스로 오피스텔에서 벗어나거나 하는 등 최소한의 회피와 저항을 하지 않는 점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신빙성이 떨어지는 진술이 성폭력 피해자로서 2차 피해 등으로 발생한 충격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도 명시했다.

재판부는 ‘예스 민스 예스 룰(Yes means yes rule·적극적 동의 없는데도 성관계 시도하면 처벌)’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거부했는데도 성관계 시도하면 처벌)’등을 언급하면서 “상대방의 적극적인 성관계 동의 의사 없이 성관계로 나아갈 경우 이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체계를 도입할 것인지 여부는 입법정책적인 문제“라고 덧붙였다. 우리 법체계는 두 개념 모두 성폭행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점을 들어 무죄 판단의 근거를 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항소 의지를 밝혔다. 서울서부지검은 “피해자는 피해사실을 일관되게 진술했고, 피고인의 요구에 거부 의사를 표시했을 뿐만 아니라 피해 사실을 여러 사람에게 호소하는 등 그 신빙성이 인정됨에도 법원이 달리 판단했다”고 반박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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