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이 개봉 20일째 누적관객수 12만 명을 돌파했다. 아무리 '천만영화'가 익숙해진 요즘이라지만, 다양성 영화가 10만 관객을 돌파하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게다가 '어느 가족'은 2018년 개봉한 다양성 영화 중 스크린수 126개('어느 가족' 일일 최고 스크린수) 미만 작품 중 가장 빠르게 10만 관객을 돌파하며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다.
국내에도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국내 최고 흥행 성적이기도 하다. 그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12만 6861명)가 감독 개인 최고 흥행작 1위 자리를 수년간 지켜왔다. 그러다 이번에 '어느 가족'에 1위를 내주게 됐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어느 가족'은 할머니의 연금과 훔친 물건으로 살아가는 가족이 우연히 길에서 떨고 있는 다섯 살 소녀를 데려와 함께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어느 가족'의 원제는 '만바키(万引き家族, 좀도둑) 가족'이다. 수입사에 의해 보다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제목으로 변경됐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가슴 따뜻한 관람평들이 쏟아진다. 각박한 시대 변화 속에서 가족 구성원끼리 밥 한끼 먹기도 힘든 게 현실인데, 이 작품은 '진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는 게 요지다.
영화는 원제처럼 좀도둑 가족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연금을 받고 사는 할머니 하츠에 시바타(키키 키린)를 중심으로 함께 모여 생활하는 오사무(릴리 프랭키), 노부요(안도 사쿠라), 쇼타(죠 카이리), 아키(마츠오카 마유)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이다.
서로를 엄마, 아빠 등의 호칭으로 부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를 가족으로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오사무와 쇼타가 좀도둑질을 하고 집에 오던 길에 어린 소녀 유리(사사키 미유)를 발견한다. 이들은 추운 날 혼자 있던 유리를 데려와 저녁 식사를 한다. 이후 다시 유리를 데려다 주러 가지만, 유리 엄마의 말을 듣고 아이가 학대 받는단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유리를 데리고 돌아오면서 다섯 식구는 여섯 식구가 된다.
언뜻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가슴 따뜻한 가족이지만, 사실은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복잡한 관계에 엉켜있는 사람들이다. 결말로 다가가면서 '어느 가족'이 숨기고 있는 비밀들이 공개된다.
관객들이 특히 감동 받은 장면도 있다. 극 중 노부요는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건 거짓말이야. 진짜 좋아한다면 사랑한다면 이렇게 하는 거야. 이렇게, 꼬옥"이라고 말하며 상처받은 유리를 따뜻하게 껴안아 준다. 이 장면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안도 사쿠라가 내뱉는 대사는 영화의 명대사로 단숨에 떠올랐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 케이트 블란쳇의 극찬으로 화제가 된 장면도 있다. 바로 노부요가 취조 당하는 장면이다. "누군가가 버린 걸 주웠습니다. 버린 사람은 따로 있는 거 아닙니까?"라는 대사와 함께 눈물을 하염없이 닦아내는 노부요의 모습에서 영화가 전하려 하는 진심이 물씬 느껴진다.
특히 '어느 가족'에선 유리 역할을 한 사사키 미유의 탁월한 연기가 돋보인다. 얼마 전 내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무도 모른다' 이후 작품에서는 아이들에게 대본을 주지 않았다. 매일 놀러 오는 것처럼 촬영장에 와서 장면마다 말로 대사를 전달해주고 귀로 듣고 자신의 말로 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슬픈 표정을 지어봐'라는 지시를 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일까. 아역배우 사사키 미유는 다소 난해한 이 영화의 주제를 완벽하게 이해하기라도 한 듯, 캐릭터와 정확히 일치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덕분에 극의 몰입도도 훨씬 높아졌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대표작으로는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 등이 있다. 그의 영화에는 섬세하면서도 담백한 감성과 폐부를 찌르는 선명한 주제의식이 있다.
감독은 "관객들에게 어떻게 감동을 줄지 의식하지 않고 영화를 만든다"고 고백한 바 있다. 또한 일부러 가족영화를 계속 선보이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동시에 아버지가 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스스로의 생각의 변화와 흐름들을 자연스레 작품에 담아낸다.
때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더라도 작위적이지 않은 감동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데워주는 힘, 그게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가진 재주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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