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중앙은행 지준율 낮춰
예금 인출 등 최악 상태는 막아
리라화 가치 연초 대비 반토막
아시아, 신흥국까지 직격탄
터키의 리라화 가치가 연일 추락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휘청이고 있다. 터키 내부에서 예금인출 사태 등 최악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추가제재가 현실화할 경우 터키발 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실제로 터키 금융시장 불안은 13일 아시아와 유럽 주식 및 외환시장을 강타했다.
터키 정부는 이날 리라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한 특단 조치로 ‘돈 풀기’에 나섰다. 또 외국 자본의 이탈을 막기 위해 감세 카드를 내비치는 한편, 자본 통제 가능성에도 거듭 선을 그었다. 전날 미국을 강력 비난하며 “경제전쟁을 치르겠다”고 공언했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또다시 위기를 자체적으로 극복하겠다는 정치적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터키중앙은행은 이날 오전 내놓은 성명에서 시장에 긴급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시중은행의 리라 채무 지급준비율과 달러 채무 지급준비율을 각각 2.5%포인트, 4%포인트 낮추겠다고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사위인 베라트 알바이라크 재무장관이 13일 오전부터 시행하겠다던 외환시장 정상화 특별대책이다. 터키중앙은행은 이번 조치로 각각 100억리라(약 1조7,045억원)와 60억달러(약 6조8,040억원)가 시중에 더 풀릴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앞서 전날에는 터키 은행규제감독국(BDDK)이 갑작스러운 환율 붕괴에 대비하기 위해 터키 은행들의 외환 스와프 및 유사 스와프 거래를 은행 자본의 50%까지로 제한했다.
터키 정부의 고강도 대책으로 예금 인출 사태 등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0일 장중 한때 전날 대비 23%까지 폭락했던 리라화 가치는 이날도 10% 가까이 추가 하락. 역대 최저치(달러당 7.24리라)를 기록했다. 연초 (1월1일ㆍ달러당 3.79리라)보다 가치가 반토막 난 셈이다.
터키 정부가 “외환 통제는 없을 것”임을 공언하고 긴급 대책을 내놓으면서 터키 외환시장 개장 시점엔 달러당 6.69리라로 다소 회복되기도 했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의 강경한 입장 표명과 미국의 추가제재 가능성 때문에 리라 환율은 온종일 출렁였다.
터키발 금융위기 확산 가능성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미국 달러와 일본 엔화 같은 안전자산으로 눈을 돌리면서 아시아와 신흥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일본 도쿄증시에서 닛케이지수는 2% 떨어진 2만1,857.43에 장을 마쳤고, 홍콩 항셍지수도 1.2% 하락했다. 중국 상하이(上海)종합지수도 장중 한 때 1.4%까지 떨어졌다가 낙폭을 다소 회복했다.
아시아와 신흥국의 통화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중국 위안화 가치는 역내시장과 역외시장에서 각각 0.4%, 0.3% 떨어졌고, 호주 달러도 0.3% 하락했다. 리라화 위기가 퍼질 것이란 두려움 때문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랜드화는 한때 10% 넘게 추락했고,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의 루블화도 하락했다. 인도 루피화는 달러당 69.62루피로 사상 최고(약세)를 기록하기도 했다. 미국 달러와 일본 엔화, 스위스 프랑 등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지만 유로존 은행들의 터키 관련 대출 부실 가능성 때문에 유로화 가치는 13개월 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터키 위기가 당장 글로벌 금융위기로 비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상황이 추가로 악화할 경우 경제적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신흥국들로 위기가 번지면서 그 충격파가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수석 글로벌 이코노미스트 앤드루 케닝엄은 “5월에 시작된 리라화 폭락은 터키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을 것이 확실하며 은행 위기도 촉발할 수 있다”면서 “광범위하게 진행될지 여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신흥국 자산과 유로화에도 악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