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
‘우파 단결’과 맞불시위로 갈려
우파 집회 20여명 참석 그치고
경찰 격리 통제에 불상사 없어
“창피해(shame) 창피해(shame)”, “나치는 집에 가라(go home, Nazi)”
12일(현지시간) 오후 5시께. 워싱턴D.C 백악관 앞의 라파예트 광장 북쪽에 운집한 시위대의 함성이 백악관 일대를 흔들었다. “노 파시스트 미국(No Fascist USA)” “노 나치(No Nazis)”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1,000여명 시위대는 “우우” 하는 집단적인 야유를 지르고 때로 팔을 들어 구호를 외치며 열기를 뿜었다.
이들의 외침이 향한 곳은 경찰이 쳐 놓은 철제 담장 너머 10여m 앞에서 열린 백인 극우단체의 집회. 1,000여명 시위대와 맞선 ‘우파 단결 2(Unite the right 2)’라는 이름의 이 집회엔 20~30여명 참여자와 기자들 정도밖에 없어 한산한 모습이었다. 집회 주최 측은 참가 신청서를 토대로 당초 400여명이 참가할 것이라고 예고했으나 실제 현장에 나온 이는 극소수였다. 집회를 조직한 제이슨 케슬러는 “백인에 대한 인권학대를 막기 위해 집회를 여는 것”이라고 확성기로 외쳤으나, 맞은 편 시위대 야유에 압도당했다. 때마침 조금씩 내리던 빗발이 더 굵어지고 천둥까지 치자 이들은 서둘러 집회를 끝내고 밴 차량에 탑승해 현장을 떠났다. 애초 이들은 시내 행진 후 오후 5시30분부터 집회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흐지부지 끝낸 것이다. 이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맞은편 시위대는 “나나나나, 헤이 헤이, 굿바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흥겨워했다. 인종 문제를 놓고 벌인 세 대결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압도했다는 자축의 승전가였다. 케슬러는 그러나 이날 트위터에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 공공 안전을 보호한다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점에서 오늘 집회는 성공적이었다”고 주장했다.
라파예트 광장을 두 쪽으로 가른 이날의 두 집회는 지난해 8월 버지니아 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 후 꼭 1년 만에 열려 많은 우려와 불안을 낳았다. 지난해 샬러츠빌에서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철거에 항의하는 극우파들의 ‘우파 단결’ 집회와 이를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는 과정에서 극우 시위대 차량이 반대 시위대를 향해 돌진해 1명이 숨지는 유혈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우파 단결’ 집회를 조직했던 케슬러가 올해 ‘우파 단결 2’ 집회를 백악관 앞에서 열기로 하면서 인종 갈등을 둘러싼 시위 대결이 미국 심장부까지 닥친 형국이었다.
하지만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시위 참가가 저조했던 데다 경찰 당국이 이들을 철저히 격리 통제하면서 별다른 충돌은 없었고 2명이 단순 폭행 혐의로 체포됐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케슬러를 비롯한 극우집회 참가자들이 포기보텀 지하철역에서 라파예트 광장까지의 1.2㎞를 행진하는 동안 경찰들이 이들을 에워싸서 이동했고 라파예트 광장에서도 가림막을 세워 양측의 집회를 철저히 분리해 물리적 충돌을 막았다.
우려했던 불상사는 없었지만 이날 백악관 앞 맞불 집회는 트럼프 시대 이후 더욱 골이 깊어지는 인종 갈등이 언제 터질지 모를 지경에 이른 미국 사회의 그늘을 여실히 보여 줬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10대 도시에서 발생한 증오 범죄는 1,038건으로 최근 10여년간 최대 수치다. 이날 오전부터 미 전역에서 워싱턴으로 속속 모여든 수십 개의 인종 차별 반대 단체 회원은 비교적 평화롭게 집회를 진행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거친 증오를 담은 구호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지난해 샬러츠빌 사태에 대해 양비론적 태도로 논란을 빚었던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트위터에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주의와 폭력적 행동을 비난한다”고 밝혔으나, 이날은 별도의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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