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기자로서 내 업무는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일이다. 이를 통해 월급을 받는다. 월급은 당연히 생계비로 쓴다. 취재하는 데 드는 비용은 회사로부터 받는 취재비로 충당한다. 다른 임금근로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을 해 월급을 받고, 업무를 하는 데 있어 드는 비용은 회사가 부담하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이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단어가 요즘 자주 등장한다. 주로 공직자들이 한다는 ‘특수활동’이다. 풀어 쓰면 ‘특별히 수행하는 활동’이겠다. 특별이라는 말이 붙은 점을 미뤄 짐작해보면 본연의 업무는 아니라는 의미로 들린다. 주업이 아닌 다른 업무, 그것도 ‘스페셜’한 업무라는데, 일반 직장인 입장에서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공직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주업무에 포함되는 업무는 아닌 것인지, 단어만으로는 도통 추정이 안 된다. 정부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나 사건수사, 또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 활동’이라고 정의하지만, 국가정보원, 검ㆍ경, 국방 등의 본연의 업무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겠다.
더욱이 그 활동을 수행하면서 ‘특수활동비(특활비)’라는 명목의 돈을 챙긴다는 점은 불편하기까지 하다. 업무를 하고 대가로 받는 월급 외의 수입으로 증빙도 필요 없는 경비다. 무엇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특별한 활동을 수행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데, 거기에 국민의 혈세를 왕창 투입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그 단면인 국회 특활비가 최근 참여연대를 통해 공개됐는데 그 내용을 보면 가관이다. 여야 원내대표가 각각 매월 4,200만원과 3,500만원을 가져갔다. 대표라는 이유 하나뿐이었다. 상임위원장도 매월 600만원을 받았다. 해외에서도 특활비를 펑펑 써댔다. 앞서 생활비로 집에 가져다 줬다는 의원도, 자녀 유학비로 썼다는 의원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2011~2013년 사이에만 혈세 240억원을 썼다. 이후에도 올해까지 매년 80억원 안팎의 특활비가 국회에 배정됐다.
연봉과 각종 비용은 별개로 받아간다. 국회의원의 연봉은 약 1억3,800만원이다. 여기에 연간 5,000만원 규모의 정책개발지원비와 각종 수당을 지원받는다. 또 지난해만 특정업무경비로 180억여원이, 업무추진비로 100억여원이 각각 국회에 배정됐다. 국내외 여행경비도 100억원 수준이다. 주업무에도 이렇게 과분한 세금이 들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특활비는 그저 ‘또 다른 월급 챙기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
뒤늦게나마 국회가 13일 여야합의를 통해 특활비를 완전 폐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특활비 폐지를 통해 우리 사회에 기득권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제도의 일면을 걷어낼 수 있게 된 것에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는 정치인의 자화자찬에 쓴웃음이 난다.
국회 특활비 폐지로 관련 논란이 마무리돼서는 안 된다. 지난해 기준 특활비 예산만도 8,990억원에 달한다. 비밀주의를 고수하는 국정원이 4,947억원을 가져갔다. 일반예비비, 다른 부서에 숨은 예산까지 합하면 국정원이 쓰는 돈은 1조원이 넘는다. 국가 안위에 관한 사항이라 인력, 활동, 예산 등 모두 공개할 수 없다지만 대통령 상납에 원장 퇴직금 수십억 사용 등 남용된 경우는 허다했다. 심지어 국정원 직원인 남편이 급여성 특활비로 ‘외도’를 했다며 이혼 소송에서 재산권을 행사한 경우도 있었다. 검찰도 ‘돈봉투’ 사건 등 특활비를 유용한 경우가 적잖고, 대법원도 양승태 대법관 시절부터 특활비를 묻지마 식으로 사용한 정황이 터져 나오는 실정이다. 현재와 같은 관리체계라면 마음만 먹으면 집행자가 언제든 불법전용을 할 수 있는 셈이다. 꼭 써야 할 곳에 쓴다는 데 뭐라 할 국민은 없다. 하지만 꼭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린 채 제멋대로 썼다는 사실만 드러나니 불신이 높아지는 것이다. 예산은닉은 이제 멈출 때가 됐다.
이대혁 경제부 차장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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