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경제가 미국의 경제 제재와 대규모 관세 인상 조치에 타격을 입으며 끝간 데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그러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오히려 경제 위기를 서방의 음모라고 주장하며 미국을 향해 “다른 친구와 동맹을 찾아 나설 수 있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터키 북부 해안에서 잇달아 대중집회를 열고 “2016년 쿠데타에 실패한 세력들이 경제 전쟁으로 터키를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미국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터키산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지금보다 2배 이상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한 데 대한 명백한 반발로 읽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같은 날 미국 최대 일간지 뉴욕타임스에 직접 보낸 기고문에서도 “미국이 터키의 주권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에겐 대안이 있다. 일방주의를 거두지 않는다면 새로운 친구와 동맹을 찾을 수밖에 없다”라고까지 적었다.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의 일원으로 대 러시아 압박과 대 테러전쟁에 조력자 역할을 해 온 터키의 노선 전환을 예고하는 발언이어서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1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해 “상호 이익이 되는 경제ㆍ무역협력”에 대해 논의했다고 양국 정부가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와 관세로 터키를 압박하게 된 것은 표면적으로 터키에 억류된 미국인 목사 앤드류 브런슨을 석방하기 위한 협상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미국은 당초 이스라엘이 억류하고 있던 터키 여성 에브루 외즈칸을 석방하는 대가로 브런슨의 석방을 얻어내려 했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석방 교환에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요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브런슨 논란 이전부터 두 나라는 각종 현안에서 입장차를 보여 왔다. 우선 터키가 2016년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한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의 인도를 미국이 거부했다. 시리아에서 터키는 미군이 지원하는 쿠르드군의 지역 자치정부 수립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또 터키는 미국이 포함된 기존의 유엔 협상과 별도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편에 서 있는 러시아ㆍ이란과 시리아 평화협정을 주도하고 있는데, 이런 독자 행동이 미국 입장에서 곱게 보일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보복성 경제 제재와 관세 인상 조치는 최근 물가가 치솟고 리라화 가치가 급락한 터키 경제의 위기 상황을 노린 조치다. 경제 위기는 곧 정권의 정당성 위기로 이어지기에 터키로서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 본 것이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오히려 경제 위기마저 외부 세력의 음모로 몰아붙이며 자신의 터키 민족주의적 발언을 강화하는 한편, 미국의 적성국인 러시아를 ‘대안’으로 언급하고 나서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양국의 대결 속에 가장 큰 걱정에 빠진 것은 터키에 대규모로 투자한 아시아와 유럽 은행의 투자자들이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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