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워커힐호텔서 행사
무자원 산유국ㆍIT강국 토대 닦아
선경그룹(현 SK그룹)이 1980년 인수한 유공(현 SK이노베이션)은 83년 인도네시아(카리문 해상광구), 84년 아프리카(모리타니아 육상광구)에서 석유를 찾아 나섰지만 잇따라 실패했다. 문책론까지 나오던 해외유전 개발팀을 당시 최종현 회장은 오히려 격려했다. 그는 "석유개발 사업은 10~20년 이상 꾸준히 노력해야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며 이익의 15% 이상을 매년 원유개발 사업에 투자할 것을 지시했다.
결국 SK이노베이션은 84년 북예멘 마리브 광구에서 원유를 발견, 88년 35만배럴의 원유를 울산항으로 싣고 왔다. 대한민국이 ‘무자원 산유국’ 대열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미래는 도전하는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최종현 회장의 경영철학이 일궈낸 성과였다.
무자원 산유국과 정보기술(IT) 강국의 기반을 닦은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 별세한 지 26일로 20년을 맞는다. SK그룹은 오는 24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각계 인사 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최 회장의 20주기 행사를 열고 고인의 뜻을 기릴 예정이라고 12일 밝혔다.
최 회장은 대한민국을 무자원 산유국으로 만든 데 이어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 계열화를 완성한 장본인이다. 73년 그가 섬유회사에 불과했던 선경(현 SK)을 세계 일류 에너지ㆍ화학 회사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밝혔을 때 많은 사람들은 불가능한 꿈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 인수, 84년 북예맨 유전 개발 성공, 91년 울산 파라자일렌(PX) 제조시설을 준공하면서 기어코 수질계열화를 완성했다.
그는 세계 최초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이동통신을 상용화해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의 기반도 닦았다. 미국 ICT 기업에 투자하며 일찌감치 이동통신사업을 준비했던 그는 94년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하며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다. 당시 8만원대였던 주식을 주당 33만5,000원에 인수하기로 했을 때 주변에서 재고를 건의하자 최 회장은 “이렇게 해야 나중에 특혜 시비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며 “나중에 회사가치를 더 키우면 된다”고 말했다. SK그룹은 “최 회장은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꿈을 치밀한 준비(지성)와 실행력(패기)으로 현실화한 기업인이었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74년 사재를 들여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당시 서울 집 한 채 가격보다 비싼 해외 유학비용에 생활비까지 지원했고, 지금까지 3,700명의 장학생을 지원해 740명에 달하는 해외 명문대 박사를 배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시절인 97년엔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도 경제 살리기를 호소하다 98년 69세를 일기로 삶을 마쳤다. 그는 화장(火葬)이 드물던 당시 “내가 죽으면 꼭 화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겨 우리나라에 화장 장묘 문화가 확산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SK그룹은 유지에 따라 2010년 500억원을 들여 세종시 연기면에 장례시설 ‘은하수공원’을 준공해 세종시에 기부하기도 했다.
최 회장의 경영 DNA는 장남인 최태원 현 SK그룹 회장이 계승하고 있다. 최종현 회장은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설립했지만 2차 오일쇼크로 반도체의 꿈을 접어야 했다. 최태원 회장은 2011년 하이닉스 인수 후 “하이닉스가 SK 식구가 된 것은 SK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오랜 꿈을 실현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98년 최태원 회장 취임 당시 재계 5위였던 SK그룹은 현재 매출 158조원, 순이익 17조3,500억원의 재계 서열 3위로 성장했다.
SK그룹은 최종현 회장의 업적과 경영 철학을 기리기 위해 임직원 기부금을 모아 숲 조성 사회적기업인 트리플래닛에 전달하고 약 16만5,000㎡ 규모 숲을 조성하기로 했다. 14일부터는 고인의 업적과 그룹 성장사를 살펴볼 수 있는 20주기 사진전을 주요 사업장에서 열고, 24일에는 워커힐호텔에서 경영 철학을 재조명하는 행사를 연다.
이항수 SK그룹 PR팀장은 “SK그룹은 앞으로도 최종현 회장의 경영 철학을 올곧게 추구해 사회와 행복을 나누며 존경 받는 일등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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