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부족 탓 수입업체 신고 의존
3,4%밖에 검사 못해 악용 많아
석탄 3만3,000톤과 선철 2,000톤 등 66억원 규모의 북한산 광물이 국내에 불법 유입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숭숭 뚫린 통관 절차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수입업체의 신고에만 의존해 통관이 이뤄지는 현행 제도가 악용된 대표적 사례인데 세관당국은 인력 부족만 탓하고 있다. 사전 검색강화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원산지나 품목을 위장한 물품의 국내 반입이 걸러지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12일 통관 전문가 등에 따르면 지난 10일 관세청의 ‘북한산 석탄 등 위반 반입 사건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두고 우리 통관 시스템의 허점을 고스란히 노출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날 관세청은 수입업자들이 북한산 석탄 등을 러시아 항구에서 제3의 선박에 옮겨 싣는 수법으로 원산지증명서를 위조해 세관에 제출하거나, 일부 물품은 원산지증명이 필요 없는 품명으로 거짓 신고하는 방식으로 불법 반입했다고 설명했다. 한 전문가는 이에 대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원산지증명서를 위조하고 품목을 바꾸는 수법으로 금지된 품목을 국내에 들여올 수 있다는 것을 세관당국이 자인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현행 관세행정은 대다수의 자발적인 성실신고를 전제로 고위험 물품 및 여행자를 선별 검사하는 이른바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 체제다. 신고를 중심으로 통관절차를 진행하되 문제가 생기면 추후 세금을 물리거나 형사처벌 하는 ‘사전신고-사후심사 체계’다. 한정된 세관 인력으로는 수입물품을 일일이 검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 당국 설명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현재 수입신고는 사전 전산으로 이뤄지며 사후검사는 전체 수입물품의 3~4% 정도에 불과하다”며 “모든 물품을 검사할 경우 물류 적체가 심각해져 국가경제에도 좋지 않은 만큼 신고자들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현실론’을 대변하듯 관세청이 내놓은 유사사례 방지 대책은 ▦우범 선박에 대한 선별 강화 ▦필요 시 관계기관 합동 검색 및 출항 시까지 집중 감시 ▦우범 선박ㆍ공급자ㆍ수입자 반입 물품 대상 수입 검사 강화 ▦혐의점 발견 시 즉시 수사 착수 등 여전히 사후심사 강화에 치우쳤다는 평가다.
인력 부족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관세청의 사전심사 능력이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실제 이번 북한산 광물 밀수 사건뿐 아니라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일가의 밀수 의혹 등으로 관세행정에 대한 국민 신뢰는 급격히 낮아진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세 전문가는 “관세청 내 조사과, 심사과 등 중대한 밀수 시도를 사전에 걸러내는 역할을 해야 할 조직들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행 자율ㆍ신속 통관제도를 악용한 사례가 빈번해지는 만큼 명확한 기준 확립, 일제 점검 강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관세사는 “통관 절차 자체가 단순화돼 현장에서는 화주(貨主)들이 신고할 때만 대충 넘어가면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100개 수입업체 중 걸리는 곳은 한두 곳에 불과해 ‘나만 안 걸리면 된다’ 인식이 파다한 상황에서 우범업자 등에 대한 검색만 강화하는 규제는 피부에 와 닿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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