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영화 ‘마녀’를 뒤늦게 챙겨 봤다.
개봉된지 한달을 훌쩍 넘겨 이젠 IPTV로 주된 상영 플랫폼이 바뀌었고, 게다가 평일 점심 시간대였는데도 극장 안은 관객들로 가득했다.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 탓에 냉방 잘된 극장과 쇼핑몰을 찾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났다지만, 이같은 객석 점유율은 분명 이채로웠다
솔직히 밝히면 기대치를 낮추는 이런저런 리뷰와 입소문들을 확인하고 갔다. 그런데 독창성의 유무 및 완성도의 높낮음과는 상관없이 의외로 흥미로웠다.
우선 독창성의 유무에서 ‘마녀’는 빵점에 가깝다. 한마디로 거대한 ‘클리셰 덩어리’다.
외화로는 ‘루시’ ‘한나’ ‘킬 빌’ ‘커버넌트’ 등에서 설정과 캐릭터를 거침없이 빌려와 뼈대를 세우고, 일본 만화의 허세 가득한 분위기와 대사를 지붕으로 얹었다.
축축 늘어지는 이야기 전개와 대사로 모든 걸 설명하는 안일함 등 만듦새도 아쉽긴 매 한 가지다. 속도와 공간 구도를 강조하는 액션 연출이 그나마 장점으로 부각될 뿐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그동안 우리 영화계에서 불모지로 여겨졌던 슈퍼 히어로물, 좀 더 구체적으론 ‘여성 반(反) 영웅’이 주인공인 시리즈물의 출발 및 성공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평가 절하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앞서 거대한 ‘클리셰 덩어리’로 언급했던 독창성의 유무 측면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을 듯 싶다.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식재료로 아주 고급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한끼 식사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클리셰 덩어리’이자 ‘기시감 투성이’인 ‘마녀’를 주목하게 되는 두 번째 이유다.
이밖에도 전도연과 전지현의 데뷔 초기 연약하면서도 결기 넘쳤던 모습과 흡사한 새내기 김다미의 발견 등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성과다.
전편의 결말부와 흥행 성공으로 미뤄볼 때 속편 제작이 점쳐진다. 단점은 사라지고 개성과 장점은 더욱 뚜렷해진 속편으로 다시 돌아와, ‘형보다 나은 아우’가 등장하길 기대한다.
마블과 DC도 아직 건드리지 못한 ‘여성 반(反) 영웅’의 활약이 시리즈물로 발전해 지속적인 지지를 이끌어 낸다면, 한국영화의 상업적 영역은 이전보다 훨씬 넓어지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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