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 판매 인정하면
실적ㆍ인사평가 등 불이익
소비자 피해 인정 쉽지 않아
보험사 상품 판매의 72% 달해
“판매채널 책임 강화” 목소리 못 내
은행의 우월적 지위도 한 몫
70대 주부 A씨는 3개월 전 은행 직원의 권유로 매달 10만원씩 납입하는 보험에 가입했다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적금처럼 매달 10만원씩 넣으면 만기 때 돌려 받는다고 해서 가입했더니 만기 때 돌려 받지 못하는 보장성 보험(건강보험)이었던 것.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인 A씨는 심지어 해당 보험 가입 대상도 아니었다. A씨는 보험사에 불완전판매에 따른 계약 해지를 요청했지만 약관상 판매처인 은행 직원의 모집경위서가 없으면 환불이 어렵다고 했다. 해당 은행은 담당 직원이 다른 지점으로 발령이 나서 불완전판매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며 경위서를 써줄 수 없다고 책임을 미뤘다. A씨는 “자세한 설명도 없었고, 가입 자격조차 따져보지 않고 상품을 판매해놓고 환불을 안 해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억울해했다.
생명보험사 상품의 70% 이상이 은행을 통해 팔릴 만큼 방카슈랑스(은행 창구를 통한 보험상품 판매)가 보편화됐지만, 상품의 내용이나 위험성 등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은행의 무책임한 불완전판매 영업행태로 소비자 피해가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불완전판매를 인정한 직원 및 영업점에 실적뿐 아니라 인사평가 등에서도 불이익을 주는 은행의 내부 규정이 소비자 환불 요구를 외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A씨처럼 보험계약 시 약관 내용을 계약자에게 설명하지 않은 경우 등의 불완전판매 행위가 발생하면 보험계약이 성립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보험약관에 명시돼 있다. 이 경우 계약자는 납입한 보험료와 그에 대한 이자를 모두 돌려받을 수 있다. 다만 계약취소 시 판매자가 불완전판매를 인정하는 모집경위서가 필요하다.
문제는 보험설계사나 보험대리점과 달리 은행은 불완전판매 발생이 해당 직원과 지점의 인사평가 등과 직결돼 있다 보니 소비자가 은행을 상대로 불완전판매 인정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가령 A씨가 보험을 가입한 은행은 해당 직원에게 보험 가입금액의 100%인 10만원을 실적으로 인정해준다. 하지만 계약이 취소되면 가입금액의 110%를 실적에서 제한다. 10만원짜리 보험을 판매했는데 불완전판매로 계약이 취소되면 11만원(보험 가입금액의 110%)이 실적에서 빠진다는 얘기다. 은행권에 따르면 각 은행 사규에 따라 불완전판매 시 보험 가입금액의 110~150%를 판매한 직원의 실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뿐 아니라 고객만족지수 등이 별도로 차감돼 해당 직원과 지점의 인사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한 은행 관계자는 “불완전판매를 인정하면 핵심성과지표(KPI)가 깎여 향후 진급이나 인사평가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며 “이렇다 보니 해당 지점에선 잘못을 인정하고 고객의 계약취소 요구에 응하기보단 되도록이면 고객을 설득해 보험을 유지하도록 유도한다”고 말했다.
물론 보험설계사나 보험대리점도 불완전판매를 했을 때 모집경위서를 제출해야 하고 수수료 환수와 벌점부과 등 불이익이 있다. 하지만 설계사나 대리점은 보험사와 계약에 의해 맺어진 관계라서 인사평가를 받지 않아 고객의 환불이나 민원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게 보험업계의 설명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설계사는 고객이 환불해달라고 하면 보험사에 수수료 돌려주면 그만”이라며 “보험료 벌점부과로 영업정지 등의 조치가 따를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다른 보험사 상품을 판매하면 되기 때문에 큰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보험 판매에 있어 은행이 지닌 우월적 지위도 불완전판매 관행을 견제하기 힘든 이유다. 4대 시중은행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 중 순이자이익을 제외한 비이자이익은 1조8,208억원. 이중 보험 판매(방카슈랑스)에 따른 수수료 수익은 1,185억원으로 6.5%에 불과하다. 반면 생명보험사 23곳의 상반기 수입보험료(2조3,092억원) 가운데 은행에서 판매된 보험의 수입보험(1조6,553억원)가 차지하는 비중은 71.7%에 달한다. 은행은 방카슈랑스 수익이 절대적이지 않지만, 보험사 입장에서는 은행이 가장 큰 판매채널인 셈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방카슈랑스 판매 비중이 크다 보니 판매채널(은행)에 책임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를 보험사가 내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안철경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은행 스스로 불완전판매를 했다는 인정을 하기가 쉽지 않으니 은행에서 보험에 가입할 때 충분히 소비자에게 내용을 알릴 수 있도록 실질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지원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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