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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랑 산다] ‘다산의 상징’ 토끼와 중성화 수술

입력
2018.08.12 13:00
수정
2018.08.2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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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부위를 핥지 못하게 하는 ‘넥칼라’를 쓰고 있는 토끼 랄라. 이순지 기자
수술 부위를 핥지 못하게 하는 ‘넥칼라’를 쓰고 있는 토끼 랄라. 이순지 기자

토끼는 예부터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보통 암컷이 임신을 하면 한 번에 5,6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임신 기간은 한 달 정도다. 암컷 토끼는 새끼를 낳자마자 24시간 후부터 다시 임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번식률이 높다.

토끼의 높은 번식률 때문에 웃지 못할 국가 정책들이 나오기도 했다. 국제유가 폭락에 따른 경제난으로 심각한 식량 부족 사태를 겪고 있던 베네수엘라에선 지난해 9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에 의해 ‘토끼 계획’이 승인됐다. ‘토끼 계획’은 번식력이 강한 토끼를 애완용이 아닌 식용으로 길러 부족한 동물 단백질을 섭취하자는 캠페인이다. ‘토끼 계획’이 발표되자 토끼를 반려동물로 생각했던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또 지난해 11월 폴란드에서는 토끼를 출산 장려 홍보 영상에 출연시켰다. 폴란드 보건 당국은 여성들에게 “토끼처럼 번식하라”고 출산을 독려했다.

그런데 ‘다산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토끼를 반려동물로 데려온 순간 반려인들의 고민이 시작된다. ‘중성화를 해야 할까?’ 중성화는 반려동물의 생식기능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간단히 말하면 새끼를 가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개, 고양이와 달리 토끼 중성화 수술은 국내에선 낯설다. 그리고 많은 토끼 반려인들은 ‘중성화’ 수술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수술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한 걱정과 인위적으로 토끼가 새끼를 낳지 못하게 해도 되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나도 수술로 랄라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지난해 여름에야 중성화 수술을 결정했다.

“토끼 중성화 도대체 왜 하라는 건가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영국 토끼복지협회(RWAF) 홈페이지 등을 보면 토끼 중성화 수술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보통 생후 5개월부터 5살까지 중성화 수술을 하라고 권한다. 나이가 들면 토끼가 수술 자체를 견디지 못해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성화 수술로 수컷 토끼는 음낭을 절개한 후 고환을 제거하고, 암컷 토끼는 복부를 절개해 자궁을 들어낸다.

토끼보호단체들이 중성화를 권하는 이유는 ‘공격성’과 ‘생식기 질환’ 때문이다. ‘공격성’은 주로 수컷 토끼에게 나타난다. 수컷 토끼들은 발정기가 되면 암컷을 차지하려는 본능 때문에 공격적으로 변하는데, 이때 주인에게 난폭해질 수 있다. 또 영역 표시를 위해 소변을 아무 곳에서나 뿌리는 경우도 있다. 암컷 토끼는 수컷 토끼보다는 드물지만 반려인을 갑자기 깨물거나 다리와 팔 등에 몸을 비비는 행동을 한다고 한다. 영국 토끼보호단체 ‘세이프 어 플리프’는 “중성화를 하지 않은 토끼들은 공격적인 성격을 갖는 경우가 많고 토끼들도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랄라의 경우 발정기가 왔을 때, 자신의 몸에 있는 털을 뽑아 산실(産室)을 자주 만들었다. 새들이 둥지 꾸미듯 자기 털을 뽑아 안락한 방석 같은 걸 만드는 것이다. 때문에 발정기가 오면 랄라 복부 주변 털이 남아나질 않았다. 발정기 스트레스도 문제였지만 랄라처럼 암컷 토끼들은 수컷 토끼와 달리 자궁 질환 때문에 중성화를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 ‘세이프 어 플리프’에 따르면 암컷 토끼의 80%는 5살이 되면 자궁 질환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토끼 나이가 많지 않은 경우에는 수술을 견뎌낼 수 있지만, 나이가 많은 경우에는 치료 도중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 발병 원인을 제거하자는 의미로 ‘중성화 수술’을 권한다.

영국 수의사 몰리 바르가는 저서 ‘토끼 의학 교과서’에서 “나이가 든 암컷 토끼의 자궁과 유방에서 종양이나 내막염 같은 생식 장애가 빈번히 발생한다”며 “호르몬과 관련이 있는 중성화 수술을 하면 이런 질병들을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성화 수술을 결심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의사’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중성화 수술에 대한 위험성도 물론 존재한다. 동물병원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미국 수의학 센터(VCA)는 보통 중성화 수술로 인한 합병증은 거의 없다고 설명한다. 다만 미국 수의학 센터 연구진은 마취 반응, 내부 출혈, 수술 후 감염, 수술 부위 봉합 물질 대한 반응 등에 대해 반려인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극히 드물지만 마취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또 중성화 수술 후 움직임이 지나치게 활동적인 토끼가 있는데, 이때 내부 출혈이 발생해 합병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수술 후 감염은 절개 부위 주위에서 발생한다. 토끼가 혀로 수술 부위를 과도하게 핥거나 더러운 환경에 있을 때 주로 생긴다. 수술 부위를 봉합한 물질에 민감한 토끼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봉합 물질을 제거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수술 합병증 외에 비용 문제도 있다. 영국의 경우 수컷 토끼 수술 비용은 약 11만 원, 암컷 토끼는 14만 원 정도다. 토끼를 입양하면 무료로 중성화 수술을 해주는 토끼 단체도 있다. 국내에서는 토끼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이 많지 않고, 동물병원마다 가격이 조금씩 달라 전화로 직접 문의해 보는 것이 좋다. 암컷 토끼인 랄라의 경우 약 40만 원의 수술 비용이 들었다.

고심 끝에 토끼 중성화를 결정했다면, ‘수의사의 수술 경험’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 토끼보호단체 ‘집토끼협회’는 “토끼 중성화 수술은 다른 동물들과 비슷하게 비교적 안전한 수술”이라면서도 “다만 토끼 중성화 경험이 없는 수의사에게 수술을 맡기는 것은 안 된다”고 경고했다.

토끼는 개와 고양이에 비해 스트레스에 약하고 예민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전신마취가 필요한 중성화 수술을 할 때 적절한 마취와 수술 기법이 중요하다고 한다. 토끼복지협회 역시 올바른 수의사 선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집토끼협회’는 수의사에게 꼭 해야 할 질문들을 홈페이지에 소개했다. 아래의 질문들을 수의사에게 한 후 적절한 답변을 하는지 반려인이 판단해야 한다고 한다.

▦1년 동안 몇 마리의 토끼를 진료했나요? ▦토끼 중성화 성공률은 얼마나 되나요? (집토끼협회 자료 기준 99%가 안전) ▦자궁과 난소를 모두 제거하나요? ▦수컷 토끼의 경우 음낭과 복부 중 어디를 통해 고환 쪽으로 들어가나요? (집토끼협회에 따르면 복부라는 대답은 불필요한 외상을 주기 때문에 부적절하다) ▦토끼 수술 전에 음식과 물을 먹어야 할까요?(토끼는 수술 중 구토를 하지 않기 때문에 소화관을 비우는 것은 맞지 않다) ▦어떤 마취제를 사용하나요? ▦수술 후 어떻게 회복 시간을 갖나요?

토끼 피비가 중성화 수술 후 동물병원 회복실에 누워 있다. 이순지 기자
토끼 피비가 중성화 수술 후 동물병원 회복실에 누워 있다. 이순지 기자

중성화 수술 이후에는 반려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성화 수술 후에는 토끼에게 몸에 좋은 간식과 영양제를 주는 것이 좋다. 보통 암컷 토끼들은 수술 후 혼자 있기를 원하고 먹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때는 주사기를 이용해서라도 음식을 먹여야 회복에 좋다.

‘토끼꼬리’라는 영국 동물보호단체는 2014년 토끼 264마리를 대상으로 중성화 수술과 관련된 연구를 했다. 연구에 따르면 수컷 토끼의 경우 수술 후 평균 2일 이내에 체중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빠르게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암컷 토끼의 경우에는 5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밝혔다.

랄라는 중성화 수술 후 고생을 많이 했다. 수술 부위를 계속 핥아 다시 병원을 찾는 일도 있었다. 결국 랄라는 상처 부위를 계속 핥아 ‘넥칼라’를 사용했다. 넥칼라는 토끼 목에 두르는 것인데 상처 부위를 핥지 못하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보통 스트레스가 심한 토끼들에겐 잘 사용하지 않는다.

중성화 수술 후 랄라가 가장 좋아하는 사과를 간식으로 줬다. 이순지 기자
중성화 수술 후 랄라가 가장 좋아하는 사과를 간식으로 줬다. 이순지 기자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겠지만, 중성화 수술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항상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갈린다. “토끼의 질병 예방 등을 위해 발전된 과학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과 “자연 그대로 살게 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이 맞선다.

나 역시 4년이 넘게 중성화 수술을 두고 고민을 했다. 미래에 생길 수도 있는 자궁 질환을 걱정해 중성화 수술을 했지만, 결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중성화 수술 후 회복실에 누워있는 랄라를 보며, 작은 토끼에게 내가 몹쓸 짓을 한 것 같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걱정과 달리 랄라는 잘 지내고 있지만, 중성화 수술을 고민하고 있는 반려인에게는 충분히 공부한 후 선택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내 토끼가 수술 후 아프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토끼도 괜찮다고 장담할 순 없기 때문이다.

이순지 기자 seria112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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