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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양제츠 극비 방문과 구한말 외교

입력
2018.08.1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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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북아 정세를 124년 전 청일전쟁 상황에 빗대는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나라는 외세별 선호 세력으로 분파되고, 열강들은 이를 이용해 한반도에서의 자국 이익 극대화를 위한 개입 노력을 재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강대국의 과거 야심이 오늘날에도 유효한지를 분석한 글은 아쉽게도 없다. 이들의 전통적인 한반도 국익관에 대한 면밀한 이해 없이 이들이 보여 주는 행위 자체만으로 개입의 결과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들의 전통적인 한반도 국익관은 한반도의 지리적 고유성으로 인해 변한 게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의 전통적 한반도 이익관을 이해하는데 인색했다. 특히 북중 동맹 요소 때문에 중국의 것을 이해하는데 무심했다. 그래서 우리는 작년 4월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밝힌, 한반도가 중국 역사의 일부라는 그의 역사관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올해 우리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재발했다.

지난달 11, 12일 양제츠(楊潔篪)가 공식 직위가 아닌 공산당 공식 직함(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주임)으로 극비 방한했다. 한중 관계 역사상 초유의 사건으로 우리나라 외교의 미래를 심히 우려할 수밖에 없다. 우리 외교 당국에 그가 보여 준 외교 행보가 우리 외교의 미래에 어떠한 의미인지를 아느냐고 묻고 싶다. 그의 행보는 ‘중국의 꿈’, 즉 중화질서의 구축에 첫발을 내딛는 신호탄이다. 역으로 최소한 대중 외교에서 우리가 이제 중국에 끌려가는 ‘을’의 입장임을 천명해 버린 셈이 됐다. 양제츠에게서 130여년 전 조선을 좌지우지한 위안스카이(袁世凱)를 볼 수 있었다.

위안스카이는 청말 조선의 대내외 정책을 결정할 권리를 부여받고 12년(1882-94)간 섭정했던 장수였다. 그의 임무는 대한반도 종주권과 청의 동방 방어체계 수호 이익을 견지하는 것이었다. 전자는 외세의 한반도 침투와 장악 기회 방지였다. 후자는 조청 동맹을 통한 열강의 한반도 침략 방어였다. 실패해도 한반도가 열강의 청에 대한 군사적 위협 기지로 전락하는 것만은 방지하는 것이다. 오늘날 중국이 사드에 민감한 이유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런 사명감에 입각해 위안은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평정했다. 후자의 공로로 청 조정은 1884년 그를 전권대신으로 임명했다. 그의 공과에 대한 중국 사학계의 평가는 분명했다. 그의 공로로 정변 진압과 청의 종주국 지위 수호가 꼽힌다. 과오로는 조선이 개화를 통해 자주 독립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그의 과도한 간섭으로 빼앗은 사실을 지적했다.

이번 양제츠 위원의 극비 방한이 우리 정부 말대로 중국 요청에 의한 것이면 매우 심각한 사건이다. 우선 회담이 중국 요청으로 부산에서 열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을 불러냈다는 의미다. 둘째, 우리 정부가 중국을 맹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에서 중국이 같은 결을 보인 것에 현혹된 것이다. 셋째, 우리 정부가 회담 내용을 공개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이다. 정 실장이 미국에 직접 설명했지만 미국의 불신은 미 국무부의 중국담당관이 한국에서 직접 확인 작업을 한 사실로 드러났다. 이번 비밀회담이 원활한 대화를 위한 조치라는 정부 설명은 비밀회담의 의미에 대한 무지를 노정했다.

외교에서 비밀회담은 다음 상황에서 이뤄진다. 회담 주도권에 대한 확신하에 특별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신념이 있을 때다. 또는 특정 상황에 대한 상대방 입장을 간보기 위해 할 수 있다. 혹은 특정 현안을 놓고 상대국과 타협이 가능하나 주변에 누설되지 않기 위할 때 한다. 중견국 외교의 성공 비결은 정정당당함과 떳떳함에 있다. 지혜로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과 우방에 정당하지 못하면 ‘양치기 소년’이고 결과는 고립이다. 역사를 반면교사로 어렵게 얻은 독립 자주권을 정당하게 수호해야 후세에 떳떳할 것이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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