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정유재란이 끝난 2년 뒤 일본은 격한 내전에 휩싸인다. ‘세키가하라 결전’이라 이름 붙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 일본을 장악하게 된 전쟁이다. 그런데 이 세키가하라 결전에 투입된 군인 수가 도합 18만명이었다. 조선과 중국을 상대로 7년간 국제전쟁을 치렀는데 곧이어 18만명의 군인들을 동원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정유재란 이후 4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 병자호란 때 조선의 정규군 수는 겨우 3만5,000명 수준이었는데 말이다. 일본은 ‘사무라이의 나라’라 전쟁에 미쳐 지낸 군인들이 엄청나게 많아서였을까. 아니면 조선이 그저 무능하고 나태했기 때문일까.
그런 측면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미안하게도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원래 일본은 인구가 많은, 큰 나라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러 추정치를 참고해 고려시대 인구가 200만명 정도였을 때 동시대 일본은 550만명 정도, 16세기 조선이 400만명이었을 때 일본은 1,200만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산한다. 1900년 대한제국 인구가 1,000만명 수준이었을 때 일본은 이미 4,000만명이었다. 18세기 런던의 인구가 86만명, 파리가 54만명, 베이징이 50만명, 조선의 한양이 30만명쯤이던 때에 에도 인구는 120만명에 달했으니 말이다. 이 단순한 결론에다 ‘미안하지만’이란 조건을 붙인 건 우리네 감정 때문이다. 과거사 때문에 일본을 기어코 낮춰 봐야 하는 심리 때문에 일본이 의외로 큰 나라라는 점을 자꾸 외면한다.
역지사지 일본
심훈 지음
한울 발행ㆍ205쪽ㆍ2만4,000원
그래서 필요한 게 ‘역지사지 일본’이다. 제목이 웅변한다. 마음이 간다면 알아서들 역지사지한다. 그런데 굳이 ‘역지사지해 보자’고 말하는 건 사이가 영 안 좋단 얘기다. 역지사지란, 우리가 애써 알려 하지 않는 일본의 여러 풍경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일본 사람은 ‘안전’에 목숨 거는 건 단지 지진 때문이다. 지진 못지않게 태풍, 벼락, 돌풍, 용오름 등 자연재해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나라다. 그 때문에 일본 기상청은 한 해 6,000억원의 예산을 쓰면서 지상 1,300곳 관측소를 운영하는 초거대 기관이다. 이외에도 일본식 꽃꽂이의 특징, 조선은 물론 중국보다도 더 큰 목조건물을 지을 수 있게 해 준 삼나무의 존재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엮었다. 일본에 대한 오랜 관심과 객원교수로 두어 차례 일본에 머문 경험 등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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