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호주FTA 이후 염소 가격 폭락
폐업지원정책으로 폐업 농가 늘어난 것이 원인
싼 염소 늘어나 더 이상 판매 안돼
사료값도 못 내 600마리 죽어 나가기도
“염소가격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졌습니다. 이젠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 전국 각지에서 모인 염소사육농가들이 한 목소리로 정부에 ‘염소 긴급 수매(收買ㆍ농축산물을 사들이는 것)’를 요구했다. 이들은 한국ㆍ호주자유무역협정(FTA)으로 만들어진 ‘지원정책’이 오히려 염소농가를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고 주장했다.
염소농가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염소 판매 자체가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정부가 20억~30억원 규모로만 사들여줘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태봉 비대위 위원장은 “㎏당 1만4,000원이던 염소가격이 2014년 12월 한국ㆍ호주FTA 체결로 염소 시장이 개방된 이후 폭락해 지금은 4,000~5,000원선”이라며 “이제는 이 가격으로도 거래가 안 되는 상황”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실제 싼 가격의 염소가 넘치다 보니 염소를 사려는 이들이 확 줄어 농가는 사지에 몰린 상황이다. 전남 담양군에서 왔다는 김치성(52)씨는 “염소를 키워도 내다 팔 수가 없으니 사료값도 못 벌고 있다”며 “엄마 염소에게 사료를 먹이지 못해 젖이 안 나와 최근에 새끼 염소 600마리가 죽었다”고 한숨 쉬었다. 경북 예천군에서 왔다는 강모(56)씨는 “㎏당 적어도 8,000원은 돼야 사료도 사고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비대위는 염소가격 폭락과 유통이 꽉 막힌 원인으로 ‘FTA 폐업지원제’를 꼽는다. 이는 FTA로 사육이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축산 품목에 대해 폐업을 희망할 경우, 순수익 3년치를 한 번에 지급하는 제도다. 안 위원장은 “폐업으로 인한 손해를 메워주기 위한 제도 탓에 오히려 폐업 희망자가 늘어 염소 물량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가격이 뚝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12월까지인 폐업기간을 내년 10월까지 늘려 당장 염소 출하량을 조절해보려 했다. 하지만 비대위는 효과가 미미하다고 주장한다. 안 위원장은 “폐업하려는 사람이 빨리 팔려고 하지 기다렸다 팔지 않는다”며 “기간을 늘려도 홍수 출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안 위원장은 이어 “정부 차원의 긴급 수매 실시를 포함해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발동 등 필요한 조치는 모두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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