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진보 대립, 참여정부 닮은꼴
규제완화 실용노선, 국가차원 바람직
개혁과제 성과로 지지층 요구 부응을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중 보수진영 이상으로 진보진영과 대립했다.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법 개정, 한미 FTA 추진 과정에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고뇌와 결단에 대한 이해를 구했지만 진보진영은 되레 날선 비판을 가했다. 임기를 1년 남긴 2007년 2월17일, 노 대통령은 청와대브리핑에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한다’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진보진영을 정면 겨냥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진보진영만 사는 나라인가”라고 직격하며 “진보가 진보 다우려면 미래문제에 보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날렸다.
10년도 더 지난 일을 기억에서 불러온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그때와 흡사해서이다. ‘노무현 트라우마’의 영향인지 참여정부 시절 만큼은 아니지만 국정 현안에 대한 진보진영 지지층의 문재인 정부 비판이 매서워지고 있다. 각은 날카로워지고 목청도 높아졌다. 지난해 사드 임시배치 결정 당시의 대립 이후 집권 2기에 접어들어 일자리 창출과 경제위기 극복이 화두가 되자 갈등 전선이 뚜렷해지고 있다. 진보성향 지식인 323명이 7월 “문재인 정부는 경제개혁 청사진도 없고, 개혁 의지도 박약하다”며 비판 선언을 한 것이 신호탄이 됐다. 3대 경제정책(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의 세부내용들이 가시화하자 입장차는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 개방경제, 재벌개혁, 규제완화 등에서 실용주의적, 신자유주의적 입장을 보이며 지지층 반발에 부딪쳤던 참여정부 시절과 판박이다. 노 대통령은 ‘유연한 진보’에 방점을 찍었지만 진보진영은 ‘왜곡된 진보’라며 맞섰다. 여기에 집권당 내부 반발까지 포개져 결국 참여정부 국정 동력은 급속히 약화했다.
청와대도 참여정부 시절의 쓰라린 기억을 의식하는 듯하다. ‘삼성 구걸’ 논란이 그 증좌다. ‘구걸’이란 말은 쓰지 않았다지만 삼성에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를 요청하는데 대한 진보진영과 지지층의 비판을 염두에 두는 기류는 분명해 보인다. 지지층과 진보진영의 비판 수위가 높아지는데 대한 위기감이 정권 내부에 퍼져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참여정부를 경험한 문 대통령은 진보진영과의 대립 상황을 어떻게 해소하고 경제위기를 극복해 갈 생각일까.
문 대통령은 “정부가 재벌, 관료에 포획”되고 있다는 진보진영 비판에도 은산분리 규제완화를 약속했다. 이는 과감한 규제완화를 통한 경제활력 회복을 위해 실용노선을 걷겠다는 선언이다. 보수언론마저 문 대통령의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평가했으니 적어도 규제완화 측면에서 정부의 혁신성장은 탄력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지지층의 우려와 비판 목소리에 적극 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답은 무엇보다 개혁과제에서 성과를 내는데 있다. 재벌 지배구조 개선, 경영권 승계 과정의 불법ㆍ부당 행위 차단, 갑질 행위 근절 등 지지층이 체감할 만한 가시적 조치와 결과물이 뒤따라야 한다. 특히 경제회복의 성과를 지표로 확인시켜줌으로써 실용노선 채택이 옳았음을 입증해야 한다. 3대 정책이 톱니바퀴 돌 듯 확실하게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정책의 낙수 효과를 거두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부풀리지 말고 차분하게 여건이 나아지고 있음을 목격하게 해서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해야 한다. 은산분리 규제완화가 금융기관의 전횡을 막는 효과도 있는 것처럼 정책이란 양면적임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때론 압박도 필요하지만 진보진영 지지층일수록 더 많은 대화, 소통에 인내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진보진영도 곱씹어볼 부분이 있다. 노 대통령은 서거 후 4개월 뒤 출간된 ‘성공과 좌절, 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에서 진보진영과 처음 대립한 이라크 파병에 대해 “옳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을 맡은 사람으로서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이어서 파병한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철저하게 보수진영만 대변한 정권 9년의 결과가 어땠는지 모두가 보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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