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 무한대가 나란히. 동 터 오기 전. 새벽에 먼 길 떠나신 황현산 선생님. 소금을 가늠해서 뿌리면 정확한 간이 맞았다던 선생님 엄마의 손을 꼭 닮은, 그런 문학평론가셨고 번역가셨고 이 시대의 지성이셨고 저희 어린 글쟁이들의 친구셨고 울타리셨죠.
스테판 말라르메의 이 시도 선생님의 번역이죠. 선생님께서 붙인 주석을 보면, 1898년에 써진 “끝을 그린다”는 1864년의 처음 원고에는 “끝없이 그린다”였다고 하죠. ‘끝없이 그린다’, 반복에서 시작된 이 시구는 1898년에 이르러, ‘끝을 그린다’에 다다르게 된 것이죠. “가늘고 파리한 선 하나”에서 시의 끝까지 따라가면 얼굴 하나가 완성된다고, 선생님은 숨은 그림 찾는 법을 알려주셨죠.
평생 비금도 소년의 물결을 품고 사셨던 선생님. “제 영혼의 푸른 결에 접 붙을 것만 같던” 꽃 한 송이에 몰두하셨던 선생님. 많이 아프셨는데 자신의 시간과 나라의 어둠을 맞바꾸는데 주저하지 않으셨던 선생님. “시는 패배를 말하는 시까지도, 패배주의에 반대한다. 어떤 정황에서도 그 자리에 주저앉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시의 행복이며 윤리”라는, 선생님 뜻 알았기에 염려되었지만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하였어요.
병을 앓기 시작하셨던 몇 년 전 글쟁이들이 네 잎 클로버 곁에 썼던 문장. 선생님 기억하시죠? 이 문장으로 인사드려요.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 여기서 손 흔들어요. 이제 모두 끝마쳤다. 감사. 선생님은 특유의 문장을 놓아주고 길 떠나는 채비하고 계신 거죠? 한 손 곁으로 남은 한 손을 아주 천천히 옮겨 나란히 두 손을 만드시던, 끝까지 시간과 자신을 정확하게 일치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신 선생님. 선생님 글에 담아놓으신 보물찾기 미션을 계속 수행할 저희들을 지켜봐 주세요. “다른 사람 사랑하고 생각해야” 가능해지는 것이 “명랑의 윤리”임을 저희가 잊어버리지 않게, 엉뚱한 곳으로 가면, 부드러운 그물로 감싸 올려주실 거기쯤 계셔요. 선생님.
이원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