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액화산소도 ‘속수무책’
최근 열흘간 26만마리 죽어
덜 자란 물고기 헐값 팔기도
수 억 들여 심해 취수관 설치
지난 8일 경북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S수산업체 양식장. 이곳 대형 수조에는 바닥에 배를 붙이고 있어야 할 강도다리 수십 마리가 허연 배를 수면 위로 드러내고 떠다니고 있었다. 이미 수 백 마리를 건져 낸 뒤였지만 뒤집힌 물고기는 계속 물 위로 떠올랐다. 이날 양식장 취수관의 바닷물 온도는 섭씨 29.5도로 통상 강도다리가 사는 14~17도, 한계 수온 26도보다 월등히 높았다. S수산 대표는 “2년간 70톤에 달하는 강도다리를 키웠지만 최근 사흘 만에 15톤 넘게 폐사했다”며 “양식업 28년 만에 가장 큰 위기를 맞아 양식장에 얼음과 지하수, 액화산소까지 붓고 있지만 뒤돌아서면 수십 마리씩 죽어 있다”고 허탈해 했다.
경북 동해안 양식장마다 물고기 집단폐사를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양식장들은 지난달 31일 고수온주의보가 발령되자 아직 크지도 않은 새끼 물고기를 헐값에 내다 파는가 하면 낮은 온도의 바닷물을 공급받기 위해 고가의 심해취수관 설치에 나서는 등 안간힘을 쏟고 있다.
같은 날 S수산에서 남쪽으로 4㎞ 가까이 떨어진 남구 구룡포읍 영동수산의 수조는 텅 비어 있었다. 지난해 고수온으로 25톤이나 집단 폐사했던 이곳은 올해 고수온 예고에 다 자라지도 않은 강도다리를 모두 팔아 치운 것이다. 영동수산처럼 올해 포항지역 양식장의 80%가 고수온을 피해 조기 출하했다.
영동수산은 고수온이 올해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1억5,000만원을 들여 심해 취수관 설치에 나섰다. 심해 취수관을 설치하면 수온이 28도 이상인 날에도 20m 깊이의 20~23도 해수를 끌어 쓸 수 있다. 하지만 취수관 하나 설치비용이 3억원이 넘어 행정기관이 사업비 절반을 지원하더라도 양식업체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영동수산 이병대(59) 대표는 “마음 편히 고기 한 번 키워보고 싶어 심해 취수관을 설치하고 있다”며 “양식장 규모로는 2개를 만들어야 하는데 너무 돈이 많이 들어 겨우 하나 깔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시에 따르면 고수온이 3년째 계속되면서 지난해 양식장 3곳이 심해 취수관 공사를 했고 올해는 7곳이 설치 중이거나 완공했다. 이성규 포항시 수산자원팀장은 “심해 취수관의 수온이 일반 양식장 취수관보다 5도 정도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해마다 고수온 기간이 길어지자 많은 비용이 들어도 심해 취수관을 설치하겠다는 신청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31일 고수온 주의보가 발령된 후 9일까지 열흘간 경북 동해안의 포항과 영덕, 울진, 경주지역 양식장 35곳에서 강도다리 등 물고기 26만2,967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경북 동해안에는 고수온으로 18일간 포항 등 양식장 38곳에서 64만6,000마리의 물고기가 죽었다.
경북도와 포항시는 올해 고수온 주의보가 지난해보다 4일 빨리 발령됐고 기상변화를 줄 수 있는 태풍 등이 한반도를 비껴가고 있어 피해 기간이 지난해보다 훨씬 길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김두한 경북도 해양수산과장은 “당분간 태풍이나 많은 양의 비가 내릴 가능성이 낮아 고수온 상태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액화산소 공급 등 행정 지원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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