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북한의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7월 27일 북한은 미국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유해 55구를 보냈다. 이 가운데 인식표인 군번줄 1개도 함께 있었다. 이 인식표의 주인은 1950년 10월 평안북도 운산전투에서 중공군의 개입에 밀리던 도중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의무부대 소속 육군 상사 찰스 호버트 맥대니얼이었다.
8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ㆍ실종자확인국(DPAA)은 버지니아주 알링턴 펜타곤 건물 인근 호텔에서 맥대니얼의 두 아들에게 인식표를 전달하는 짧은 기념 행사를 개최했다.
맏아들 찰스 맥대니얼 주니어(71)는 “인식표가 발견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 자리에 앉아서 한참을 울었다”라고 회상했다. 부친이 실종됐을 때 고작 3살에 불과했던 그는 부친에 대해서 흐릿한 기억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뭐라고 말하기 힘든 순간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인식표를 가리키며 “그나마 우린 이걸 받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둘째 아들 래리(70)는 부친 실종 당시 2살로 부친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그는 자신의 부친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 세대 다른 수천명의 용사들이 똑같이 목숨을 바쳤다. 우리 아버지의 군번줄이 먼저 발견된 것 때문에 부친의 사연이 더 중요하게 평가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맥대니얼 가족은 인식표를 부친의 고향인 인디애나폴리스에 보관할 것이라고 밝혔다.
AP통신에 따르면 찰스 맥대니얼은 육군 1기병사단 8기병연대 소속 3대대에 배치된 의무병이었다. 1950년 10월 운산에서 중공군에 밀리던 한국군을 구원하기 위해 배치됐다. 아서 도리가 저술한 ‘이 잔혹한 전쟁: 맥아더의 한국’에 따르면, 맥대니얼이 속한 3대대는 운산에서 미처 후퇴하지 못하고 포위된 후 4일 밤낮을 중공군의 공격에 맞서 싸운 끝에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혔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맥대니얼은 이 때 포로로 잡혔다는 기록이 없다. 같은 부대에 소속된 다른 의무병이 맥대니얼은 전투에서 숨졌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DPAA 감식단 관계자는 맥대니얼 형제에게 인식표가 발견됐다는 것이 55구 시신 가운데 부친의 유해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면서 우선 시신의 유전자를 검출하고 치아 형태를 확인하는 등 다른 신원검증 가정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냉전과 한국전쟁 과정에서 실종된 미군 가족들은 매 해 워싱턴에 모여 실종된 미군 병사의 행방에 관한 미군 관계자의 설명을 듣게 돼 있는데, 이날 인식표 전달식은 이 행사 도중에 이뤄졌다. 현재 한국전쟁에서 실종된 미군은 최소 5,300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1950년 압록강에서 포로가 된 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삼촌 존 맥도널 일병의 소식을 듣기 위해 참석한 마리 윌로워는 AFP통신에 “최근 북한의 유해 송환 소식을 듣고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됐다”라며 “삼촌이 고향으로 돌아와 편히 쉬게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 (내게는) 모든 일의 마무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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