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고 권위 영화상인 아카데미상이 ‘블랙 팬서’ 같은 슈퍼히어로 영화를 위해 대중 영화를 위한 부문을 신설한다고 발표했다가 뭇매를 맞고 있다. 갈수록 대중과 유리된 시상 경향이 비판을 받으며 시청률 하락에 허덕이는 아카데미상이 명목상 대중 취향을 인정해 주는 상을 만들어 ‘존재감’을 유지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아카데미상을 시상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이사회는 8일(현지시간) “오스카에 더 접근성 높은 시상식을 만들고자 한다”라며 “대중 영화에서의 성취”를 인식하는 새로운 부문을 만든다고 발표했다. 이사회는 새로운 시상 부문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향후 발표할 것이라고 했으며, 내년 2월 24일로 예정된 아카데미 시상식에 적용될 지 여부도 확정되지 않았다.
그간 ‘아바타’ ‘스타워즈’ ‘미션 임파서블’ 연작에서 최근 ‘원더우먼’에 이르기까지, 대중성이 높은 영화들이 관객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음에도 정작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문라이트’나 ‘셰이프 오브 워터’ 같은 예술 영화에 밀리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 영화 부문이 신설된다면 ‘블랙 팬서’ 같은 인기는 많았으나 비평가들에게는 낮게 평가된 영화가 아카데미상에서 인정을 받을 확률은 높아지는 셈이다. “갈수록 덜 중요해진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는 아카데미상이 외부 비판을 일정 부분 수용한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여론의 반응은 오히려 싸늘하다. 소셜미디어 트위터에서는 신설 부문이 대중 영화에는 최고영화상에 못 미치는 ‘2등급 상’을 주겠다는 의미라는 지적이 일었고, ‘블랙 팬서 어워드’를 만들고 있다는 비아냥까지 이어졌다. 앞서 슈퍼히어로 영화 팬들 가운데서는 대중성과 정치적 의미를 두루 확보한 ‘블랙 팬서’를 아카데미상 수상작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언론도 시상 부문 신설에 그다지 좋은 평가를 주지는 않고 있다. 대중문화 전문잡지 버라이어티의 시상식 편집위원 크리스토퍼 테이플리는 “(시청률 위기에 빠진) 아카데미의 절박한 시도”라며 “아카데미가 (대중적인) 영화들을 추방할 코너를 마련해 두고, ‘잘했다고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겠다’는 의미로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BBC방송의 엔터테인먼트 담당기자 리조 음지바는 “아카데미 회원인 투표자들이 대중 영화에는 대중 영화만의 부문이 있으니 최고 영화상에는 자연히 덜 대중적인 영화에 표를 줄 것”이라며 “이것이 아카데미가 대중성을 회복하는 적절한 방법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버즈피드뉴스의 필자인 앨리슨 윌모어도 “아카데미가 대중 영화와 예술 영화 사이 의도치 않은 경계선을 그은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최근 아카데미 회원들의 인적 구성에 다양성을 늘리는 등 개혁을 시도한 만큼 기존의 최고 영화상 레이스에서 변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나았다고 지적했다.
이날 아카데미 이사회는 이외에도 장장 4시간으로 지나치게 긴 시상식의 길이를 3시간으로 줄이고, 이를 위해 시상하는 24개 부문 가운데 일부는 광고 시간에 시상하면서 시상 영상은 나중에 방송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또 2019년 시상식은 기존보다 이른 2월로 당겨 개최하기로 했다.
2018년 3월 진행된 제90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ABC방송에서 방영했는데, 총 2,650만명이 시청해 90년 역사상 최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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