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모양은 항상 동그랗다. 달은 매일 변한다. 15일 주기로 찼다 기우니 역동적인 변화가 눈에 쉽게 띈다. 우리 조상이 달의 움직임을 시계로 이용한 배경이다. 달 모양의 변화를 기록한 것이 달력, 즉 음력(陰曆)이다. 지금도 ‘한 달’ ‘다음 달’로 표기하듯, 음력은 날짜와 시간을 정하는데 유용하다. 다만 계절의 변화를 정확히 반영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달의 운동에 따른 음력 1년은 354일로 양력(365일)보다 11일 적다. 3년이면 한 달이나 차이가 나 계절과 맞지 않는다.
▦ 농사가 주업이던 시절에는 계절의 변화를 맞춰야 일조량, 강수량 등을 예측할 수 있었다. 날짜 계산에 편리한 음력을 기준으로 하되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양력(陽曆)도 필요했다. 계절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1년에 360도 돌면서 생긴다. 태양이 시곗바늘 방향으로 15도씩 옮겨갈 때마다 절기 한 개씩을 넣어 만든 게 24절기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6개 절기를 배치했다. 첫 번째는 입춘, 마지막이 대한(大寒)이다. 24절기는 중국 주나라 때 고안됐고 우리나라에선 고려 충선왕 때부터 널리 사용됐다.
▦ ‘입 닥쳐! 추워지려면 아직 멀었어.’ 입추에도 폭염이 꺾이질 않으니 우스개 해석이 많이 나돈다. 입추는 양력으로 8월 7, 8일 무렵. 지구가 태양 주위를 타원 궤도로 돌아 절기 날짜가 매년 조금씩 다르다. 입은 ‘곧’이라는 뜻이다. 이제 곧 가을이 찾아온다는 의미다. 옛날에는 가을이 입추부터 입동 전까지였다. 농가월령가는 입추를 ‘빗소리도 가볍고 바람 끝도 다르도다’라고 노래했다. 고려사는 ‘입추가 지나면 서늘한 바람이 불고, 이슬이 내리며, 쓰르라미가 운다’고 했다.
▦ 기록적인 폭염이 지구를 달구고 있다. 세계 각국이 추진 중인 온난화 방지대책을 감안해도 금세기 말 지구 온도는 섭씨 2도 상승할 전망이다. 이 경우 폭염 발생 확률은 3배 증가한다. 100년 전부터 여름은 계속 길어지고 있다. 이미 여름은 6~8월이 아니라 5~9월로 바뀌었다. 10년쯤 뒤에는 겨울에서 곧장 여름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차면 기우는 게 자연의 이치라지만, 인간의 욕망이 초래한 환경 파괴는 조상의 지혜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기후 변화의 법칙을 반영했다는 24절기가 사라질 날도 머지않았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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