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 추방ㆍ국비 유학생 철수 계획
여성 운동가 바다위 석방 요구한
캐나다 제물 삼아 서방에 경고
사우디아라비아 여성 인권운동가의 체포를 캐나다 외무장관이 비판하자 사우디가 캐나다에 있는 자국 유학생을 철수시키고 국영 항공사의 토론토행 항공편을 폐쇄하는 등 초 강경 대응하고 있다. 서방 국가의 지속적인 인권 외교에 불만을 품은 사우디가 서방 국가의 비교적 ‘약한 고리’인 캐나다를 제물로 경고 사격을 날리는 모양새다.
6일(현지시간) 캐나다 일간지 글로브앤드메일 등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는 장학금 지원을 받고 캐나다 대학 및 훈련과정에 진학해 있는 사우디 유학생을 철수시킬 계획을 내놓았다. 사우디 정부에 따르면 캐나다에는 대략 1만5,000명이 지원을 받아 유학하고 있는데, 이들이 빠지면 캐나다는 연간 수억달러에 이르는 수입을 잃는 셈이 된다. 또 국영 사우디항공은 캐나다 토론토를 오가는 항공편을 13일부터 모두 폐쇄하기로 했다. 이미 사우디는 전날 캐나다의 내정 간섭을 용인할 수 없다며 캐나다와의 신규무역 및 투자 거래를 동결하고, 사우디 주재 캐나다 대사에게 추방 명령을 내린 상태다.
사우디의 초강경 태세는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외무장관이 2일 미국 시민권자인 여성 운동가 사마르 바다위의 석방을 요구하자 여기에 내정 간섭이라고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바다위는 사우디 여성의 인권향상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2년 여성의 날에 ‘용기 있는 세계 여성상’을 받은 유명 여성 운동가다. 그의 남동생 라이프 바다위도 2014년 이슬람교 예언자 무하마드와 고위 성직자를 조롱한 웹사이트를 만든 혐의로 징역 10년 및 채찍 1,000대를 선고 받은 채 복역 중이다.
프리랜드 장관은 사우디의 격렬한 반발에도 이들의 석방을 요구한 캐나다의 ‘인권 수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6일 밴쿠버에서 기자들에게 “전세계에 걸쳐 캐나다의 인권을 지지하는 입장은 새로운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라고 밝히며 캐나다에 있는 외교관들의 활동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프 바다위의 부인 엔사프 하이다르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최근 캐나다 시민권을 얻었다. 프리랜드 장관은 하이다르가 캐나다인인 만큼 그 가족의 처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내정 간섭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사우디의 유례 없이 강경한 반격이 서방 국가들에 “인권은 문제삼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우디는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수립한 ‘비전 2030’ 개혁안에 입각해 서방의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 발전을 노리고 있어, 서방에서 보이는 이미지의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여성의 운전을 허용하고 경제활동 참여를 위한 길도 완화하는 등 표면상으로는 개혁을 하고 있지만, 뒤로는 자국의 인권ㆍ여성운동가를 잇달아 체포하고 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5월 이래 최소 15명 이상이 임의로 억류됐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행방조차 알 수 없다”라고 발표했다. 이에 캐나다 외에 미국과 유럽연합(EU)도 우려를 표명했다.
이런 가운데 캐나다를 표적으로 선택한 이유도 전략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베스마 모마니 캐나다 워털루대 정치학과 교수는 “쥐스탱 트뤼드 캐나다 총리가 진보 성향이고, 프리랜드 장관이 여성 외무장관이라는 점을 노렸다”라며 “서방의 인권 관련 압력을 싫어하는 사우디 국내외 보수층과 비슷한 성향 독재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캐나다가 미국ㆍ영국처럼 사우디의 서방 핵심 동맹 교역국이 아니라는 점도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 모마니 교수는 “영국 의회는 시종일관 사우디의 예멘 침공을 비판해 왔지만, 사우디 정부는 런던에 부유한 사우디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반격을 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일단 사우디가 캐나다를 겨냥한 일차 목표는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걸프협력회의(GCC)는 사우디 국영통신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사우디 내정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간섭”이라고 규탄하며 사우디 편을 들었다. 그러나 서방의 반응은 싸늘하다. 미 국무부는 “사우디 정부에 구금된 운동가들의 법률 사건이 적법 절차를 준수하면서 진행되고 있는지 정보 공개를 요구했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한 아랍권 외교관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인권 비판을 이유로 외교관을 추방하겠다고 한 것은 최악의 수”라며 “기업가들도 사우디와 엮이면 인권 침해에 동조한다는 인상을 받을 것을 우려해 투자를 재고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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