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찬∙김진표, 與 당권 경쟁
김병준, 한국당 혁신 지휘
정동영은 평화당 새 당대표에
손학규도 바른미래 당권 도전
# “오랜 경륜과 자질 확인” 평가 속
“문재인 키즈, 새 정치세력 없어 한계”
“낡은 올드보이 출사표” 비판도
정치권이 노무현 전 대통령 시대 인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여의도 정가의 간판 인물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과거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면면들로 속속 채워지고 있어 이에 대한 갖가지 촌평이 나오는 상황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선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와 경제ㆍ교육부총리를 각각 지낸 이해찬ㆍ김진표 의원이 25일 선출하는 새 집권당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서는 정책 브레인으로 교육부총리를 지낸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가 비상혁신대책위원장으로 보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통일부 장관 출신 정동영 의원이 민주평화당 새 당대표로 선출되는 등 여야 전면에 포진하고 있다. 각 당 대표군만 놓고 보면 참여정부 국무회의를 연상케 할 정도다. 반면 집권 1년이 지나도록 ‘문재인 키즈’라 부를 만한 인사는 눈에 띠지 않는 게 특징이다.
민주당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8ㆍ25전당대회에서는 참여정부 경력을 앞세운 후보들의 경륜 경쟁이 치열하다. 민주당 내에서 한때 노무현 정권 출신 인사를 ‘폐족(廢族)’으로 까지 비유되며 청산대상으로 치부됐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이해찬 의원은 책임총리직을 수행한 경험으로 “유능하고 ‘강한 리더십’으로 문재인 정부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진표 의원은 경제ㆍ교육부총리를 잇따라 맡았던 노하우를 앞세우며, ‘유능한 경제당대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수행비서를 맡았던 송영길 의원은 자신이 ‘제2의 노무현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자신하고 있다.
보수정당의 적통을 잇는 한국당에도 노무현 색깔이 등장한 현상이야말로 파격적이다. 보수정당에 ‘노무현 정신’을 이식하는 초유의 정치실험이란 반응이 나올 정도다. ‘노무현의 남자’로 불리던 김병준 위원장이 혁신의 키를 잡고 보수 부활을 위한 도전을 진행 중이다. 김 위원장은 노 전 대통령 후보시절 정책자문단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청와대 정책실장, 교육부총리 등 참여정부 정부ㆍ청와대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지난달 30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결국 우리 사회가 통합을 향해 가야 한다”며 방명록에 ‘모두, 다 함께 잘사는 나라’라고 적었다. 김 위원장은 이념 투쟁을 통한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을 공언하고 있다. 혁신의 피날레로 인적 청산도 예고하고 있다.
평화당은 노 전 대통령이 창당한 열린우리당 초대 의장 출신의 정동영 의원이 5일 신임 당대표 선출로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대선후보 시절 현직인 노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기도 했지만, 정 신임 대표는 누가 뭐래도 노무현 정권의 여당인 대통합민주신당(현 민주당) 후보로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맞붙는 등 노무현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정 대표는 취임 첫날인 6일 봉하마을을 찾아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방명록에 “늘 약자 편에 서신 노무현 대통령님의 정신을 잇겠습니다”고 글을 남겼다. 정 대표는 참배 후 기자들과 만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하도록 만들어줬다면, 노 전 대통령은 저를 정치적으로 성장시켜줬다”며 자신이 정치적 후계자임을 드러냈다.
바른미래당에서는 손학규 상임고문이 당권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손 고문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정동영ㆍ이해찬 의원과 경쟁했었다. 손 고문이 바른미래당 대표가 된다면 정의당을 제외한 원내 1~4당 대표가 모두 ‘노무현 시대’ 주역이었던 사람들로 채워지게 된다.
정치권에선 오랜 경륜과 자질을 바탕으로 한 검증된 리더십이란 측면에서 노무현 정부 시대 인사들이 정치 전면에 나서는 현상을 꼭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란 평가가 적지 않다. 하지만 ‘올드보이’의 귀환이라며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그만큼 정치의 진입장벽이 높다는 뜻도 된다”며 “‘올드보이’의 재등장보다 ‘문재인 키즈’라 할만한 새 정치세력을 키워내지 못하는 한계가 더 뼈아프다”고 지적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여야를 불문하고 다시 등장하는 올드보이들의 출사표를 들어보면 언젠가 들었던 낡은 말들”이라며 “우리 정치가 건강 하려면 지금과 같은 정치적 동맥경화 현상은 해소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이의재 인턴기자(한양대 국어국문학과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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